1992년 4.29 폭동 당시 한인사회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로 부각되면서 정치력 부재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한인사회의 권익을 대변할 정치인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선거에서 김창준 다이아몬드바 시장이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정호영씨도 가든그로브 시의원에 당선되는 정치적 쾌거를 이뤄냈다. 당시만 해도 한인사회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한 이들의 주류사회 정치 진출은 감격 그 자체였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인들의 연방 하원의원 도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한인사회를 대표해 강석희 어바인 시장이 48지구에서 연방 하원의원 출마를 공식 선언한데 이어 주 조세형평위원으로 연임중인 미셸 스틸 박 부위원장도 내년 연방 하원의원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에드 로이스 의원의 정책보좌관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온 영 김 보좌관도 풀러튼 지역구 출마를 고려하고 있으며 최준희 전 에디슨 시장도 지난 4월 뉴저지 연방하원 제7지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들의 연방 하원의원 도전은 곧 한인사회의 도전이기도 하다.
현재 남가주에서 가장 먼저 연방 하원의원 도전 의사를 공식화한 강석희 어바인 시장은 자서전 ‘유리천장을 넘어서’에서 1992년 LA 폭동이 새로운 도전을 안겨준 사건이라고 밝혔다. 당시에 가전제품 유통업체 서킷시티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폭동으로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군 한인들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현장을 접하면서 한인사회에 정치가 없음을 실감하게 됐다고 한다. 폭동은 강석희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세계한인정치협의회, 미주동포후원재단, 밝은미래재단이 주최하고 본보, 한미경제개발연구소가 주관한 ‘제1회 한인 정치 컨퍼런스 및 차세대 리더십 포럼’은 한인사회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에 대해 깨우쳐준 좋은 계기가 됐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봉환 LA 주민수권국 디렉터는 “LA 한인사회는 4.29 폭동으로 커뮤니티를 보호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함을 느꼈으며 선거구 재조정 및 투표 참여가 정치력 신장을 위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인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제 발표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상당수의 한인들이 미국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이라고 여겨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정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분야가 없다. 불경기로 신음하고 있는 미국과 캘리포니아주의 엄청난 재정적자를 야기한 정치인들에게도 선거나 정책토론을 통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폭등하는 대학 학자금에 대한 책임도 정치인은 물론 선거직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목소리를 알려야 한다. 지난 5월 한인사회의 노른자위 땅인 윌셔와 호바트 건물이 일부 개발업체들의 매입경쟁으로 번져 커뮤니티 센터 조성 등이 무산될 우려가 제기됐었으나 한인 커뮤니티가 목소리를 높여 결국 CRA가 이곳에 커뮤니티센터와 공원을 조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번에 한인들의 연방 하원의원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인사회의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정치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은 물론 이번 기회에 정치력 신장이 왜 중요한지 한인사회가 깨달아야 한다. 즉 ‘정치는 큰 경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한인후보들의 연방 하원의원 도전은 한인 사회가 미국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지지하는 한인 정치인을 통해서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전달하는 창구를 마련해야 할 당위성이 우리에게 있다. 이번 정치 컨퍼런스에 주제 발표자로 참여했던 베트남계 자넷 누엔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는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에서 단 3표 차이로 당선된 정치인이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행사가 정치인의 당락은 물론 커뮤니티의 권익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연방 상·하원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2012년은 한인사회와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또한 20년만의 한인 연방 하원의원 탄생이 기대가 된다.
박흥률 부국장 겸 기획취재부장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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