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미국은 부도국가로 전락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들도 그렇게 예상하고 대부분 미 국민들도 그렇게 믿는다.
미 연방정부가 빌려 쓸 수 있는 돈의 법정 한도액은 현재 14조3천억 달러인데 빚으로 꾸려가는 살림이어서 8월2일이 지나면 한도액을 넘어서게 된다. 연방의회가 그전에 부채상한액을 올려 주지 않아 더 이상 빚을 얻을 수 없어지면 돈이 없는 연방정부는 각종 경비를 제때 지불하지 못해 채무불이행 사태, 디폴트를 맞게 된다.
나라살림을 부도낸 정치가들을 어느 유권자가 용서하겠는가. 그러므로 민주·공화 양당은 마지막 순간에 결국 부채상한 증액에 합의, 국가의 크레딧은 지켜낼 것으로 믿는 것이다. 최소한 우선 몇 달간 더 지탱할 단기적 임시 증액안이라도 통과시키겠지…
1962년 이후 연방의회는 74번이나 부채상한을 올려왔다. 그로 인해 매년 늘어나는 빚더미에 미국의 재정난은 더욱 깊어졌지만 증액안 통과가 금년처럼 불확실하거나 뜨거운 정치논쟁의 쟁점으로 부각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워싱턴에선 부채상한 증액을 둘러싸고 오바마의 민주당과 의회 공화당이 한판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모양새는 사활 건 결투처럼 비장해보이지만 내세우는 명분은 진부한 파당적 이념의 되풀이에 머물고 있다. 쟁점은 증액안 합의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적자감축 방안이다. 지출삭감은 어느 쪽도 반대 못할 대전제다. 문제는 세금인상이다. 공화당은 “세금인상 절대불가!”를 고수하며 “더, 더, 더, 삭감”을 고집하고 민주당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혜택 폐지”를 병행하여 사회복지예산 삭감의 “고통 최소화”를 주장한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적자감축협상은 진전을 보이는 듯 했다. 향후 10년간 2조 달러 적자 감축에 합의도 했다. 그런데 2주전 민주당의 세금인상안에 반발한 공화당이 퇴장하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디폴트 결과에 대한 구체적 위기감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 국가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모든 이자율이 뛰어오르며 연방정부 지출의 45%가 중단될 것이다.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에서 군인과 FBI 봉급이 후불수표로 지급될 수도 있고 공무원들이 임시 감원당할 수도 있으며 식품검사나 기상예보 서비스가 축소될 수도 있다…의회엔 이미 디폴트 사태의 경우 지불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법안도 제출된 상태다.
민주당은 디폴트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인가를 경고하고 공화당은 디폴트 결과는 과장이라며 경제를 해치는 진짜 위험은 세금인상이라고 경고한다. 유권자들을 의식하며 국가부도 공포를 조장하는 민주당이나 세금인상 공포를 조장하는 공화당이나 그 목적이 국익보다는 정치적 이득이란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번 협상 결렬의 책임은 공화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실 부채증액 협상에서 그동안 오바마는 양보를 거듭해왔다. 공화당이 얻어낸 것은 상당하다. 이쯤에서 합의해도 공화당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백악관이 동의한 적자감축의 내용을 보면 지출삭감 83%와 세금인상 17%다. 처음 3대1 분담을 주장하던 오바마가 5대1로 물러선 것이다.
오바마가 제안한 세원 확대는 제대로 된 세금‘인상’도 못된다. 석유기업에 대한 정부보조를 중단하고 법인제트기 소유주에 세제혜택을 폐지하는 등 부유층에 대한 “불필요하고, 부당한” 세제혜택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규모도 다 합해 수백억 달러에 불과하다. 수조 달러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된다. ‘허약한’ 오바마에 대한 리버럴 진영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정도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아직 지출삭감을 더해야한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공화당의 완강함엔 여론도 불만이다. 퓨센터 조사에서 42%가 디폴트가 발생한다면 공화당 책임이라고 응답했다. 보수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도 “1야드 삭감 대신 1인치 세금인상을 청해도 거부하는” 공화당은 “정상적 정당이 아니다”라 며 무소속 유권자에게 외면당할 것을 우려했다.
미국의 재정위기는 그리스와는 달리 “경제적으로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뉴스위크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부시감세혜택만 중단하면 향후 10년간 4조달러 세수가 확보되고 초당적 적자대책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각종 편법절세를 폐지하면 1조5천억달러가 절약된다는 것. 문제는 “정치적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 정치적 매듭을 풀어보려고 오늘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부채상한 서밋’을 개최한다. 의회 양당지도부들을 초청한 협상 재개다. 지난주 공화당을 향해 “시간을 끌지 말라”고 질타한 오바마가 더 이상 양보 없이 공격모드로 나아갈 지, 양극화 싸움을 혐오하는 무소속 유권자들을 의식하며 협상타결을 위해 한발 더 물러설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독립기념일 연휴까지 반납하고 돌아온 첫날, 여전히 팽팽한 대치상태인 동료의원들에게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영국시인 T.S. 엘리옷의 서사시 ‘황무지’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독려했다 :
“서둘러요, 제발, 시간 됐어요(Hurry up, please, it’s time. 문 닫을 시간을 알리는 바텐더의 외침)” 디폴트를 막기 위한 협상기간은 딱 2주 남았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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