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 특히 공화당 후보들에겐 인색한 주류 미디어들이 존 헌츠먼에겐 이상하게 후하다. 지난 주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전 공식출마를 선언한 헌츠먼의 지지도는 10명 주자 중 현재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 ‘과장보도’를 비난할 정도로 찬사가 쏟아진다.
“롬니는 오바마를 겁주지 못한다. 오바마가 겁내는 건 헌츠먼이다” - 에스콰이어 잡지는 이런 찬사를 바치며 퓰리처 수상기자가 쓴 장문의 프로필을 게재했고 MSNBC는 ‘모닝 조’ 프로그램에서 “침착하고 논리정연하며 핸섬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가 최종주자로 남을 것을 점치며 “헌츠먼은 모닝 조 후보”라고 선언했다.
유권자에겐 아직 생소하기만한 후보이지만 ‘헌츠먼 열기’란 게 있다면 표밭보다는 미디어에서 더 뜨거운 것만은 확실하다.
51세인 그의 이력서는 훌륭하다. 개인 스토리부터 흥미롭다. 억만장자 아버지를 둔 기업인 출신에 중국어 유창한 빈틈없는 외교관이며 2명의 동양계 입양아를 포함한 7명 자녀를 둔 아버지, 록밴드 연주를 위해 고교를 중퇴했던 소년, 모터사이클을 타고 사막을 달리는 중년…
본선에서 당선가능성 높은 후보의 조건도 빠짐없이 갖추었다 : 돈과 젊음과 외모, 주요 이슈에 대한 심층적 지식과 뚜렷한 자기주장, 명료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웅변능력,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어필하는 ‘호감도’까지.
보수지역 유타 주의 2선 주지사로 정치적 행정능력도 검증받았다. 퓨 연구센터는 그가 재임했던 2005년~2009년, 유타를 “전국에서 일자리 성장률이 가장 좋았던 주”로 평가했다. 당시 유타의 실업률은 지금 오바마가 들으면 너무 부러울 ‘5%’에 불과했다. 78% 지지로 재선되었고 이임시 인기도는 84%나 되었다.
헌츠먼은 정말 오바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인가? 그 대답을 찾으려면 먼저 풀어야할 문제가 있다 : 그는 공화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앞 질문의 대답이 “그럴 수도”라면 뒷 질문의 대답은 “힘들다”가 될 것이다. ‘공화 후보’로서의 헌츠먼에겐 약점이 많아서다.
우선 보수이념의 선명도가 너무 약하다 : 동성애자 결혼을 인정하고 지구온난화 대책에 적극적이며 불법이민에 대한 가혹한 조처를 반대하고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을 지지하는가 하면 오바마 헬스케어 개혁의 근간인 개인의 의무적 가입도 반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몇 달 전까지 주중대사를 역임한 사실이다. 극우보수파들은 “뭐, 오바마의 대사가 공화당 대통령이 되겠다고?” 분개하는데 정작 본인은 “내 나라 대통령이 불러 내 나라에 충성한 것”이라며 오히려 당당하다.
게다가 현재의 공화당은 티파티의 오바마에 대한 분노 열기를 동력삼아 굴러가고 있는데 헌츠먼은 “대통령을 존경한다”면서 캠페인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예의바른 매너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전투적’인 공화당 핵심표밭에서 웃기네! 하는 공격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니 앞으로 한두달이 헌츠먼에겐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 숨 가쁜 고비가 될 것이다.
헌츠먼에 대한 “공화당 개혁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리더”와 “보수의 탈을 쓴 오바마 아류”라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안고 있는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 어떤 후보를 뽑을 것인가? 본선에서의 ‘당선가능성’과 ‘보수이념의 선명성’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 두 가지 다 갖춘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 출마를 공식발표한 미셸 바크먼은 티파티를 대변하는 열정적 투사이지만 본선에선 어필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선두주자 롬니나 미디어의 총아 헌츠먼 같은 중도파가 후보가 된다면 공화당 표밭은 열기가 푹 빠지면서 시들해질 것이다.
지금 공화당이 기다리는 건 ‘게임 체인저’가 될 또 다른 후보다. 최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공화당 리더십컨퍼런스 대회장에 가득 찼던 환호가 이를 대변한다 - “Run, Rick, run”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에게 출마를 독촉하는 함성이었다. 원래 민주당 출신으로 아직은 지겨운 기억이 선명한 부시의 후계자라는 약점이 있지만 당선 가능성과 이념의 선명성을 그만하면 동시에 갖춘, 그래서 공화당 유권자들이 기꺼이 표를 던질만한 ‘우리의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리가 끝까지 출마를 고사한다면? 유권자들이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의 절대명제인 “오바마 재선을 막아라”의 실현을 위해 중도파를 택하든지, 이념의 선명성을 지키기 위해 티파티 후보를 내세우든지. 그건 현재 당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공화당은 모든 세금인상을 절대 반대하며 오바마케어를 증오하는 티파티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인가. 아니면 공화당엔 아직 합리적 중도를 지지하는 말없는 다수가 존재하는가.
최근 갤럽조사의 결과는 후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50%의 공화당 유권자가 보수이념을 공유할 수 있는 후보보다는 오바마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헌츠먼 진영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조사 결과다.
헌츠먼은 뉴햄프셔를 첫 승리지로 겨냥하고 있다. 당적에 관계없이 투표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여서 무소속이 대거 지지해 줄 것으로 자신하는 것이다. 롬니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먼 친척이라는 두 명 몰몬교도 억만장자들의 뉴햄프셔 대결은 앞으로 208일 남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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