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통치한 민족은 누구일까. 먼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동유럽, 회교권까지 석권한 몽골 제국이 떠오른다. 그러나 몽골인들이 직접 오랜 기간 통치한 곳은 중국 정도고 나머지는 조공을 받거나 얼마 안 돼 축출됐다.
반면 영국은 한 때 인도와 호주, 캐나다와 지금 미국의 일부, 아프리카의 1/3, 그리고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의 수많은 섬들을 지배했다. 땅 면적상으로는 몽골이 많을지 몰라도 지구 전체에 걸친 광범위성으로 볼 때 아직까지 영국을 능가하는 제국은 없다.
대영제국의 특징은 이처럼 넓은 지역을 다스리면서도 경제적 부담은 극히 작았다는 점이다. 1763년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서 이겨 인도와 북미주를 차지한 후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나 식민지를 차례로 독립시킬 때까지 식민지 통치 비용은 GDP의 수%에 불과했다.
가장 인구가 많았던 인도의 경우 단 900명의 영국 관리들과 7만 명의 영국군대가 2억5,000만의 인도인들을 통치했다. 어째서 이것이 가능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월등한 군사력과 기술력이었을 것이다. 영국군이 제일 먼저 사용한 맥심 기관총은 1분에 수백 발을 쏟아 붓는 당시로선 가공할 무기였다. 거기다 처음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고 증기선과 전신망으로 무장한 영국을 당할 군대는 없었다.
그런 영국도 참패를 당하고 물러선 곳이 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손쉽게 인도 전역을 먹어치운 영국은 아프간 정도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보고 들어갔다 사태가 불리해지자 1942년 퇴각을 단행했다. 그러나 길목마다 지키고 있던 아프간 게릴라의 공격을 받아 4,500명의 영국군과 이들을 따르던 1만2,000여 민간인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영국은 그 후 다시 아프간을 쳐들어가 이기기는 했으나 이곳을 직접 통치하지는 못했다.
영국만이 아니다. 이곳을 처음 정복한 페르샤는 오래 가지 못했고 알렉산더가 이어 정복했으나 곧 죽었다. 그 후계자인 셀레우시드가 물려받았으나 골치만 아프자 곧 인도의 마우리아 제국에 넘겼다. 그리고는 파르티아 제국의 일부가 됐다 파르티아가 망하면서 쿠샨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회교도들이 몰려와 회교의 영향권 아래 있다가 13세기 몽골족들이 쳐들어오자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됐다. 그 후 이곳은 중앙아시아 부카라의 칸과 인도 델리의 술탄, 사파비드조 페르샤 세력 다툼의 각축장이 됐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영국이 쳐들어왔다 망신을 당하고 물러났고 20세기 후반에는 소련이 무력을 믿고 침공했다가 역시 상처만 입고 쫓겨났다. 수많은 제국이 들어왔다 나가는 바람에 인종과 언어가 제각각이고 종교도 회교에서 조로아스터교, 불교, 힌두교 등 가지가지다. 험악한 지형에다 같은 아프간에서 사는 부족끼리도 원수라 외부의 침입이 없으면 서로 싸운다.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둥지를 틀고 있던 이곳에 미군이 쳐들어갔다. 전무후무한 본토 공격을 받은 미국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 결과 10년 만에 빈 라덴을 잡기는 했으나 그 외의 성과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것 같다. 아프간 부족은 여전히 갈래갈래 쪼개진 상태고 카르자이가 이끄는 중앙 정부는 여전히 부패하고 무능하다. 이 상태에서 미군이 발을 빼면 2001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지만 더 있어도 획기적으로 사태가 호전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 단계적인 아프간 철군을 선언했다.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이라크에 이어 아프간에서도 지금부터 물러나 인적 물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아프간과 이라크 전을 마무리 지은 대통령’ 소리라도 듣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소련도 10년 만에 손을 들고 나갔는데 수천 마일 떨어진 미국이 10년 이상 버티기는 어려웠으리라. 아프간의 혼돈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