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3만3,0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거의 10년간 미국인들의 골머리와 돈지갑을 쥐락펴락 해온 전쟁망령이 내년 미국 선거 전에 아프간을 뜬다. 한반도 같은 다른 취약지로 옮겨갈까봐 걱정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많은 해외전쟁에 개입해왔다. 아프간, 이라크, 베트남, 한국, 태평양(2차 세계대전) 등등. 이들 모두 문자 그대로 ‘전쟁(war)’으로 불린다. 국내에서 일어난 전쟁도 마찬가지다. 독립전쟁, 남북전쟁도 ‘Independence War,’ ‘Civil War’이다.
이번에 61주년을 맞은 한국의 6·25는 다르다. 오래전부터 명칭을 놓고 갑론을
박을 벌여왔다. 한국정부의 오리지널 공식명칭은 ‘6·25 사변(事變)’이지만 6·25동란(動亂), 6·25 전쟁, 한국동란, 한국전쟁 등으로도 불린다. 북한은 ‘조국 해방전쟁’으로,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지원하는 전쟁)으로, 일본은 ‘조선전쟁’으로 부른다.
불과 3년 남짓한 기간에 13만8,000명의 국군 전사자와 3만7,000명의 미군 전사자를 낼 정도로 치열했는데도 전쟁 당사국인 한국 사람들만 ‘사변’이나 ‘동란‘으로 격하시킨다. 사변은 5·16 쿠데타처럼 선전포고 없이 발생하는 국내의 무력봉기를 일컫는다. 동란은 난동이다. 규모가 방대할 뿐이다. 폭동, 내란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해진 상태를 지칭한다. 지긋지긋했던 광우병 촛불시위가 이에 속한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무력충돌이다.
아마도 남한정부는 북한의 기습남침을 국내 돌발사태로 간주하고 ‘사변’으로 부른 모양이다. 혼란이 가중되자 ‘동란’이라는 호칭이 생겨났음직하다. 동족상잔의 6·25는 이내 3차 세계대전 성격의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미국을 비롯한 16개 우방국이 한국에 군대를, 노르웨이 등 5개국이 의료병참을 지원하고 중국이 북한을 제치고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사변이나 동란 수준이 아니었다. 자연히 ‘6·25전쟁’이나 ‘한국전쟁’이라는 호칭이 추가됐다.
우리 한인들은 ‘한국전쟁(Korean War)’ 호칭에 익숙하다. 미국 언론이 그렇게 부른다. 각 지역의 6·25 기념관이나 위령비들도 ‘Korean War Memorial’이다.
본국에도 ‘한국전쟁’ 칭호를 선호하는 부류가 있다. 진보, 좌파계열이다. 이들은 ‘6.25 전쟁’ 칭호에는 북한의 도발책임을 날짜로 강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김명섭 교수(연세대)는 ‘한국전쟁’보다는 ‘6·25 전쟁’이 바람직하다고 맞선다. ‘한국전쟁’은 제3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며 전쟁발발 책임이 모호해지거나 전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미국인들이 월남전을 ‘Vietnamese’ 아닌 ‘Vietnam‘으로, 이라크 전을 ‘Iraqi’ 아닌 ‘Iraq’로, 아프간 전쟁을 ‘Afghan’ 아닌 ‘Afghanistan‘으로 표기하면서 6·25만 ‘Korea’ 아닌 ‘Korean‘으로 표기하는 것은 전쟁발생 국가인 ‘Korea‘를 강조하는 대신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한국인인 ‘Korean‘들에게 귀속시키려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고 지적했다.
어찌됐든, 6·25의 명칭은 대수롭지 않다. 중요한 건 6·25의 교훈이 자꾸 잊혀지고 왜곡돼 간다는 사실이다. 이미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또는 아예 ‘안 알려진 전쟁(Unknown War)’으로 불린다. 요즘 한국엔 소위 ‘북침설’을 믿거나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 작전 때문에 남북통일이 안 됐다고 떠벌이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6·25노래는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잊지 말라고 다그치지만 1,000만 이산가족은 잊어버리라고 해도 잊지 못한다. 잊지 말라는 말은 단순히 기억하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6·25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말이다. 남북통일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6·25가 될 소지가 없지 않다.
고루한 반공주의도, 얄팍한 민족주의도 이 같은 제2의 6·25 ‘사변’을 막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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