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는 단연 한류(韓流)다. K-pop이 파리를 뒤흔들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뉴스는 평양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 가지 전망이 제기된다. 한류에 의한 한반도 통일론이다.
그 열풍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한국의 영상매체를 매일 같이 보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공산당 간부들도 한류에 빠져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반도 통일이 된다면 한류덕택이란 말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렇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한류 통일론’이 나온 지 며칠 안 돼 이번에는 대통령이 ‘통일 임박설’을 던지고 나선 것이다.
‘주관에 치우친 희망적 사고가 아닐까’- 대통령의 발언에, 한류 통일론에 쏟아지는 비판이다.
북한 붕괴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일성사망 이후부터니까 20년에 가깝다. 그러나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면서도 버텨왔다. 그래서 반론이 제기된다. 김정일 체제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는 냉정한 북한인식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류가 한반도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전망에 대해서는 표현만 다를 뿐 외국의 많은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 마커스 놀란드가 그 한 예로, 장마당을 통해 보다 빈번해진 외국 미디어와의 접촉결과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체제의 선전을 믿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라디오, CD, 셀 폰 등을 통해 생각보다 북한 주민들은 바깥세계, 특히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도 같은 견해다. 그는 현재의 북한을 냉전시기 말 동구권과 같은 체제 말기단계에 봉착한 것으로 진단한다. 정보장악력 상실이 바로 그 징후로, 한류를 비롯해 서방세계의 소식이 계속 침투, 북한 사회는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이라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오직 백두산 혈통 존속에만 있는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김정은은 김일성을 닮아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지적이다. 체제유지에 몹시 초조해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중국식 개혁개방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개혁개방이든 체제붕괴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정황에서 또 한 차례의 기근이 찾아들면 어떻게 되나. 정권붕괴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장마당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외부 소식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상황 같은 것은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다른 말이 아니다. 북한 체제는 말기적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라고 말할 것도, 인프라라고 할 것도 없다. 장마철이면 수인성 전염병에 의해 희생되는 인명이 수 십 만에 이르는 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북한 사회는 단적으로 말해 누구든지 생존을 위해서는 남의 등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사회다.” 바바라 데믹의 말이다.
하루하루의 삶은 날로 가중되는 압제 속에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바깥 세계 소식에 대해 더 많이 접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3대 세습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체제 증오감만 높아간다. 총체적 압제라고 할까, 그 방법만이 체제유지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북한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정일 사망, 그리고 뒤이은 3대 세습은 바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붕괴는 그러면 어떤 형태로 올까. 과거 동구권 몰락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붕괴라기보다 수개월에 걸친 일종의 전이과정을 거쳐 공산체제가 해체됐다. 반면 알바니아, 루마니아 같은 공산체제는 급속히 붕괴됐다. 루마니아의 경우 국민 봉기로 불과 10일 만에 체제가 무너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더 억압적인 체제일수록 무너질 때는 더 갑자기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 공식이 그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잔학성이라고 할까, 국민 탄압의 강도(强度)라고 할까. 이 면에 있어 과거 동구
권 국가들은 감히 김정일 체제와 비교가 안 된다. 차우세스쿠의 루마니아가 그나마 어느 정도 접근했다고 할까. 잔학성에 있어 김정일 체제는 일본군국주의나 파시스트 체제에 뒤지지 않는다.
그 체제는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무너질까. 각자 상상의 몫이다. 그렇지만 관련해 제시되는 포스트 김정일 시나리오들은 하나 같이 악몽 그 자체다. 무정부 상태에서 식량을 찾아 헤매는 군중, 무력집단 간의 충돌, 중국군의 한반도 진입 등.
“한류가 계속 북한 주민들의 삶을 파고든다. 남한 주민의 풍요한 삶, 자유로움, 그리고 때로는 관능적이기까지 한 K-pop 가수들의 춤.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충격은 점차 분노로 바뀐다. 체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그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다.”
그런 날이 언제 올까.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元年)으로 선포한 내년이 혹시 그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한류 뉴스와 함께 날라 온 평양발 소식은 북한 주민들이 2012년을 ‘변란(變亂)의 해’로 보고 있다고 전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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