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 예산안을 둘러 싼 새크라멘토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지난주부터 반전을 거듭하며 펼쳐지고 있는 모양새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지난주 수요일 오후, 주 의회 민주당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법정 통과마감 시한인 6월15일을 가까스로 지킨 것이다. 반세기동안 두 번째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매년 시한을 넘겨 지각했던 예산안을 올해 제때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1월 주민투표에서 통과된 프로포지션 25 덕분이었다. 예산안을 주의원 3분의 2가 아닌 단순과반수의 찬성만으로 가결토록 규정한 주민 발의안이다. 공화당의 협조 없이 다수당인 민주당만의 자력으로 ‘예산안 기한내 통과’라는 과업을 이룬 민주당 의원들은 환호하며 맥주파티까지 벌였다.
그런데 다음날인 목요일 아침, 민주당 예산안을 받아든 민주당 주지사 제리 브라운은 지체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예산안 비토는 캘리포니아 사상 첫 번째인 ‘더 역사적’ 사건이었다.
73세 노익장 주지사는 유튜브에 올린 성명을 통해 “불행하게도 내가 받은 것은 균형 예산안이 아니다. 이런 플랜으로는 앞으로 대규모 적자가 계속되고 수십억 달러 새로운 부채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법적으로 의심 가는 기법”과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회계편법을 동원했다고 거세게 질책했다.
고질적 양극화와 재정난의 늪에 빠져있는 주 의회에 편법 없는 완벽한 예산안을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 예산안이 기금전용과 힘든 결정 유보를 통해 수십억 달러 지불 유예, 가능성 불확실한 수입, 비현실적 절약 등의 편법으로 꿰어 맞춘 임시변통 ‘반창고’ 대책인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인 빌 락키어 재무관도 이런 예산안으로는 “월스트릿에서 단기 대출도 받기 힘들다”며 ‘시행 불가능한’ 플랜이라고 주지사를 거들었다.
같은 당 ‘동지들’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민주당 의회지도부는 발끈했으나 노련한 주지사는 더 이상 설명도 없이 사막지대의 태양열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다면서 새크라멘토를 떠나버렸다.
그런 상태로 냉전의 주말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 “예산 드라마”는 다시 반전을 맞는다. 민주당인 존 챙 회계감사관이 주 의원들의 급여 지불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 예산안 통과를 가능케 한 프로포지션 25엔 또 하나의 조항이 있다. 균형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통과될 때까지 의원들의 급여를 몰수한다는 내용이다. (급여 몰수 조항이 마음에 들어 유권자들이 이 발의안을 통과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며칠 예산안을 분석한 챙 감사관은 ‘회계편법과 비현실적 추정, 계산 착오’ 등을 지적하며 “균형 예산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120명 의원들이 하루 400달러씩 수천달러의 급여를 뺏기게 되었으니 새크라멘토가 부글부글 끓는 것은 당연하다. “주지사 야망 품은 존 챙의 과욕이다”“소송으로 매운 맛을 보여주자”…비난이 거센 주 의회와는 반대로 여론과 미디어에선 “진정한 공복”이라며 존 챙의 ‘용기’에 대한 찬사가 쇄도한다.
지난 6개월 브라운이 균형예산안 실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양당 의원들 마음잡기에 전력을 다했다. 퇴근 후 함께 바에도 들르고 아파트에 불러 식사대접도 자주했으며 주지사로는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주 의회 소위원회에 나가 증언도 했다.
브라운에겐 예산협상에서 양보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그의 선거공약이다 : 첫째 속임수 없는 정직한 예산을 만들겠다, 둘째 유권자 승인 없이는 세금인상 안 하겠다 - 그런데 이번 민주당 예산안은 이 두 가지를 다 어기는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제 새 회계연도 시작까지는 불과 8일밖에 안 남았다. 회계편법을 안 쓴다면 96억 달러 적자를 메울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뿐이다. 교육과 공공안전 분야의 지출을 대폭 깎는 ‘재앙적인’ 추가삭감 단행이나 세금인상이다. 아직 브라운은 7월로 만료되는 한시적 소득·판매·차량등록세 인상연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권자의 승인을 위해 주민투표에 회부해야 하는데 공화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냉전 중이던 주지사와 민주당 지도부는 ‘급여 몰수’가 선언된 화요일부터 대
화를 재개했다. 민주당과 장시간 비공개회의를 가진 브라운은 공화당과도 다시 협상을 시도할 계획이다. “균형 예산 없인 봉급도 없다”가 증명되었으니 의원들도 더 진지하게, 더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다.
공화당 4명이 세금인상 연장안 주민투표 회부에 찬성하면 일단 첫 관문은 넘을 수 있다. 공화당이 요구하는 찬성의 대가는 지출 상한선 부과와 공무원 연금개혁이다. 브라운이 민주당과 노조를 현명하게 압박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거부권과 급여몰수라는 강한 반전으로 마음 졸이게 한 “예산 드라마”가 가혹한 삭감의 칼날을 더 이상 휘두르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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