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훼어팩스 카운티의 레이크 브래덕 중고등학교에서 열렸던 밴드 음악회는 여러 가지로 많은 감동을 주었다. 교육위원으로 있으면서 학교음악회에 자주 초대를 받는데, 이날의 음악회는 지난 20년간 학교밴드 지휘를 맡아 왔던 로이 홀더 선생님이 전국밴드협회 회장을 맡아 학교를 떠나게 되어 그의 지휘자 은퇴를 기념하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750석의 강당이 입추의 여지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 좌석들의 사방을 에워싸며 추가로 의자들을 가져다 놓고 앉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1812 Overture’를 연주할 때는 약 150명가량의 졸업생들이 185명의 재학생 밴드 멤버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어 했는데, 그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이날의 연주에서 나에게 ‘1812 Overture’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사실 졸업반 학생 한 명이 그의 아버지와 같이 트럼펫 듀엣으로 테네시 왈츠를 연주하던 부분이었다. 그 학생이 자신의 솔로 순서를 마치고 그대로 무대 중앙에 서있자 평소 밴드반을 위해 많이 자원봉사해 오시던 그의 아버지가 특별 초대되어 나온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서면서 움켜진 오른쪽 주먹을 아들 주먹에 부딪히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안는 아들의 모습은 부자지간이라기보다는 친구에 더 가까워 보였고 테네시 왈츠 이상으로 감미로웠다.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좋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세대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버지도 사랑 표현에 익숙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당신의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시다가 한국동란 때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홀로 남하하셨다. 그 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어려웠던 일들을 극복하시면서 몸에 밴 고집에 내가 적응을 못해 힘들어 했던 적도 많았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그렇게 다정하게 얘기나 무엇을 같이 해 볼 기회도 없었고 나 자신도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살면서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가끔 바둑이나 장기를 두곤 했지만 그런 것을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해본지도 이제 40년이 되어간다. 고민을 하다가 연주회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산책이라도 같이 안 하시겠냐고 여쭈어 보았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반응은 역시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음에 찾아드는 또 다른 질문이 있었는데, 내가 아버지로서 내 아들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였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축구나 농구 그리고 카드놀이도 같이 할 수 있었건만 애들이 커 갈수록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짐을 발견한다. 대화라도 조금 해보려고 시도하면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싶어함을 느낀다. 물론 애들이 이제 막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시작한 20대초의 나이라 가능하면 뭐든 혼자 해보려고 같이 하는 것을 피하는 때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집의 지하실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데 마침 바로 뒤에 큰 애가 따라 올라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필자의 엉덩이 양쪽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것이 아닌가. 별안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랬다는데 사실 필자는 그 때의 장난이 얼마나 다정하고 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자주 그래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애들이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그냥 막 장난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한편으론 아버지도 혹시 나처럼 똑같이 아들인 내가 먼저 살가운 장난이라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버지도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나와 같은 마음이실텐데 아들인 내가 제대로 부응을 못해드리는 것은 아닐까. 이참에 아들에게 배운 대로 다음에 아버지를 뵈면 몰래 뒤로 돌아가 아버지 엉덩이 양쪽을 두 손가락으로 그냥 푹푹 찔러볼까하는, 왠지 우습지만 나름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오십대 아들의 어린 아이같은 장난에 깜짝 놀라는 아버지의 반응이 무척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