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숙대 총장 시절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최선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총장 취임해 보니 ‘빚더미’
“내 힘으론 해결 불가능”
회개 후 하나님께 매달려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서울 소망교회 권사)가 15일 오전 10시에 열린 나성영락교회 수요예배에 참석, 숙대총장 재직 시절 일화를 중심으로 간증을 나눴다. 이 전 총장은 고난 앞에서 경험한 믿음의 실상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도 도와주시리라는 ‘지성이면 감천’ 식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뛰었는데 결국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느냐, 얼마나 깨끗한 마음으로 그 일 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의 간증 요약.
동분서주하다 쓰러져 입원… 기도실서 통회 눈물
“명문사학 세워주시면 간증의 삶 살 것” 서원
‘지성이면 감천’ 열심보다 중요한 건 예배 깨달아
1994년 3월 취임식을 끝내고 총장실에 돌아오니 등기우편 봉투가 있었다. 축하카드인가 싶어 뜯어보니 임대료 납부를 독촉하는 세금 고지서였다. 무려 7억8,000만원이었다. 그 후 또 다른 고지서들이 날아들었다. 업무파악조차 못한 시점에서 학교 역사와 연관돼 얽힌 난제들이 앞을 막아섰다. 숙대는 1906년 고종 황실에 의해 6곳의 농경지 수익금을 재원으로 설립되었으나 남북 분단과 학교 부지의 국가 귀속 등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명문대학의 영화는 사라지고 문을 닫을 시점에서 내가 취임한 것이다.
형편이 곤궁하고 문제가 많으면 사람들은 남을 탓한다. 불신이 쌓이고 부정적인 말이 난무하며 패배주의적 사고가 팽배해진다. 문제해결을 위한 협조를 대학 구성원들에게 요청했으나 “혼자서 잘 해 보라”는 식이었다.
그때부터 소유권 정리와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 구의원, 시의원 등 수백명을 찾아가 설득하고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을 나눠서 조직적으로 그 일을 했다. 그러나 보냈던 사람마다 “총장은 우리가 공무원들에게 야단맞는 것을 즐기느냐”고 내게 항의했다. 그래서 그 후 직접 아침 7시부터 저녁식사 시간까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다녔다. 탄원서를 쓰고 아무리 애써도 해결 기미가 안 보이던 어느 날 아침 머리가 핑 도는 듯하더니 쓰러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영양실조라고 한다. “수십년 묵은 문제를 우리가 목숨 걸고 풀어주긴 힘들다”면서 억지로 만나주는 사람들과 9개월간 식사하면서 수프만 먹고 열심히 설명하느라 생긴 일이었다. ‘내 모든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라는 찬송을 혼자 부르며 울며 다니던 시절이었다.
병원을 나와 걸을 힘조차 없을 때 출석하는 소망교회 기도실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울부짖었다. “하나님, 왜 이 때 나를 총장 시키셨습니까. 내가 기독교인임을 세상이 다 아는데 왜?” 그러다 잠들었는지, 쓰러졌는지 모르는 순간, 하나님의 희미한 음성을 들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책망이 이어졌다. “네가 언제 내 도움을 구했느냐. 너 혼자 열심히 한 것이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문제가 크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집중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또 성령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빨리 사람들 만나 부탁해야지 하는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그 때 진정한 회개가 터져나왔다. 하나님께는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내 뜻대로 했던 것에 대한 것이었다. 정말 나를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구했던가, 하나님을 주인이 아니라 심부름꾼으로 알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을 계속하며 통회하는 기도를 올렸다.
회개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숙대를 명문사학으로 세워주시면 저는 하나님만 간증하며 다니겠습니다” 하는 서원을 하고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조롱까지 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왜 왔냐”던 이들이 “한 번 검토해 보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그린벨트가 풀리고 등기권을 이전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한 번은 학교 재정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중 ‘제2의 창학’을 선언하고 당시 4만3,000명에 달하던 동문들을 대상으로 ‘등록금(150만원)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벌이자는 구상이 떠올랐다. 1995년 2월 2,006명의 ‘제2의 창학을 위한 발기인’을 모아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보여 자신감이 생기고 눈을 뜨면 사람이 보여 두려움이 생기는’ 상황에서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 날 약정된 돈이 62억원이었다. 행사장인 힐튼 호텔의 지배인이 참석자가 예상을 밑돌 것을 우려, 값 비싼 도시락을 1,500개만 준비하자고 권했지만, 기도 중에 “적게 오면 네가 손해 보라”는 말씀을 듣고 2,006명분을 주문했다. 그 때 리더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숙대 교문 4군데에 새긴 일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60년이 돼 금이 간 교문은 ‘교도소문’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었다. 교문 3개를 신축하는 데 3억원이 필요하니 10명을 모아 3,000만원씩 기부를 받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새벽기도를 마치고 어떤 분을 만나 3,000만원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다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다. 너무 기뻐 “물론이죠. 교문에 이름을 새겨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분은 성경말씀을 새겨달라고 하셨다. 월요일에 학교에 나오니 걱정이 되었다. 숙대는 기독교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성경을 교문에 새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주간 학생, 교수들 사이에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난리가 났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자 총장에게 일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결국 여호수아 1장9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16~18절, 히브리서 11장1절, 이사야 60장1절의 말씀이 숙대를 드나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새겨졌다.
하나님께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고 기쁨으로 우리의 것을 그분께 드릴 때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숙명여대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으며 197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부터 모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그 후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4년반 동안 한국 최초 4회 연속 직선총장으로 재직하면서 ‘CEO형 총장’으로서 학교를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섬김의 리더십’을 통해 학교 건물 21개동을 신축하고 발전기금 1,150억원을 모금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 초기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현재 연간 3조5,000억원 규모의 학자금을 대학생들에게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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