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 새 내각을 구성하던 오바마가 가장 고심했던 인선 중 하나가 CIA 국장이었다. 안보는 젊은 대통령당선자의 아킬레스건인데 안보의 첨병이어야 할 CIA는 9.11의 치명상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포로 고문의 악명까지 더해 여론, 언론, 의회 등 사방에서 두들겨 맞는 샌드백 신세였다. 저하된 사기를 올리고 위상을 회복시킬 특별한 리더가 필요했다.
기본 자격요건은 두 가지였다 : 존경받을 만큼 청렴하고, 초당적 지지를 받을 만큼 강력한 정치적 커넥션을 가진 인물, 적임자는 곧 떠올랐다. 10년 전 캘리포니아로 낙향한 리언 파네타, 민주·공화 구별 없이 워싱턴에선 그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찾기 힘든, 가장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 이민의 아들인 그는 이민 2세답게 공부도 뛰어났고 성공의지도 강했다. 법대를 졸업한 후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땐 공화당이었다. 그가 닉슨행정부에서 민권법 시행을 감독하는 부서의 디렉터로 기용되었던 1970년은 민주당 표밭이었던 남부를 공화당 강세지역으로 바꾸려는 닉슨의 ‘남부전략’이 정부 곳곳 물밑에서 요동칠 때였다. 남부 주 의원들 선거구에선 민권법 시행의 완화를 묵인해주는 대통령의 방침에 불복했던 파네타는 결국 사직했다. 그리고 다음해 극우로 치우치는 공화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이적했다.
“정치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선, 양심이 옳다고 말하는 선이다”라고 후에 파네타는 말했다.
73년 고향인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서 연방하원에 당선되었다. “처음 그를 맞은 연방의원들은 당적 변경의 저의를 의심했다. 그러나 파네타의 친화력과 능력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그는 전통적 도덕관, 소탈한 매너에 전염성 강한 웃음을 가진, 워싱턴에서는 드물게 자만심이 필요없는 듯 보이는 사람이다”라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전한다.
9선 의원으로 강력한 하원예산위원장 등을 역임한 그를 행정부로 발탁한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백악관 예산국장은 1년밖에 하지 못했다. 그의 뛰어난 관리 능력이 절박하게 필요한 직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칸소의 클린턴 사단이 점령했던 백악관은 무절제했다. 의회와 극한대결로 치닫는 오만과 미숙함이 뒤엉키면서 침몰지경인 젊은 백악관을 구하기 위해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년 동안 산만한 백악관의 질서를 잡고 클린턴의 재선과 연방 흑자예산 실현을 도우며 ‘탁월한 매니저’로 명성을 얻은 후 고향으로 내려간 그를 또 다른 젊은 대통령 오바마가 부른 것이다.
지난 2년여 CIA는 거듭났다. 안으로 체제를 재정비하면서 밖으로 부터의 부당한 공격은 그것이 국가정보원장이든 연방하원의장이든 정면 대결로 막아낸 새 국장은 CIA 내부의 존경을 얻어냈다. 그리고 지난 달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의 성공으로 CIA는 마침내 10여년 불명예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만하면 박수를 받으며 명예롭게 은퇴할만한 여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6월 말로 73세가 되는 파네타에겐 훨씬 더 힘든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오바마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후임으로 그를 내정한 것이다. 은퇴하는 전임보다 5살이나 많은 미 사상 ‘최고령’ 신임 국방장관이다.
이틀 전 상원 군사위는 만장일치로 파네타의 인준을 승인했다. 지난 주 청문회도 드물게 ‘호의적’이었고 곧 있을 본회의 인준표결도 압도적 찬성일 것이다. 그러나 일사천리 인준을 즐거워하기엔 그의 앞길이 너무 첩첩산중이다. 국방장관은 원래 어려운 자리이지만 그가 7월1일 취임과 함께 직면해야할 임무는 ‘악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미국은 전시국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3개의 전쟁에 발을 담그고 있다. 당장 7월1일부터 주둔미군의 철수를 시작할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하고, 금년 말로 철군을 완료하는 이라크 전쟁을 원만히 마무리 지어야 하며 미국의 군사개입을 둘러싸고 백악관과 의회가 격돌하려는 리비아 사태는 전쟁터 보다 국내의 분쟁조절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화약고 같은 북한과 이란을 선두로 28개 ‘불안정 국가’들과의 관계도 챙겨야 한다.
가장 ‘터프’한 과제는 예산삭감이다. 연방적자 해소를 위해 오바마가 발표한 안보예산 감축 규모는 향후 12년간 4000억 달러다. 지난 10년 증가만 계속해온 국방예산이 처음으로, 그것도 전시에 지출삭감이라는 새 현실에 처한 것이다. 군사전략가 못지않게 예산 전문가 국방장관이 필요한 이유다. 그냥 전문가가 아니라 엄청난 낭비를 직접 체크하는 꼼꼼한 매니저이며 동시에 막강한 군수업계 로비와 그 로비에 휘둘리는 의원들의 입김을 강력히 차단할 수 있는 실력자라야 한다.
펜타곤의 낭비는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시절엔 2조달러의 용도를 설명하지 못할 만큼 체크 기능도 느슨했다. 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으면서 ‘펜타곤의 고질적 낭비’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파네타의 국방장관은 CIA국장이나 백악관 비서실장 때 못지않게 ‘성공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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