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는 인류 역사상 처음 민주주의를 한 나라다. 이 나라는 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서양 정신문명의 거인들을 배출해냈다. 후세 사람들이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찬미한 것과는 달리 이 체제에서 직접 산 대 사상가들은 이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론’은 민주주의 비판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상 국가는 대중이 다수결에 의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지혜가 무엇인지 아는 철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봤다. 그의 제자로 여러 분야에 걸쳐 스승인 플라톤과 의견을 달리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부분에 관해서만은 이론이 없었다. 그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중우정치로 전락하며 그것은 최악의 정치 형태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타도하기 위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며 잘못된 결정을 거듭하는 것을 보며 실망한데 이어 전쟁이 끝난 후 사랑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엉터리 죄명을 씌우고 다수결로 사형에 처하는 것을 보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아테네는 30년에 걸친 긴 전쟁 동안 10명의 재무관을 공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붙여 9명을 차례로 처형했는데 후에 이것이 사무 착오로 밝혀져 마지막 남은 한 명만 살아남았다. 또 해전에서 승리한 8명의 장군 중 6명을 물에 빠진 병사를 구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나중에 이들의 무죄가 입증되자 이들을 고발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처형하기도 했다.
주력부대인 대 함대를 무능한 지휘관에 맡겨 시실리에 보냈다가 모두 수장시키는가 하면 멜로스 섬 사람들이 중립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쳐들어가 남자를 몰살시키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삼는 등 아테네 민주주의는 어떤 독재 국가보다 잔인하며 무능한 면모를 보여줬다.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시민 각자가 표를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문제다. 먼 국가의 앞날이나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 나 하나 편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나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봐도 된다.
국민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권력을 잡기 위해 표가 필요한 정치인들은 달콤한 혜택을 약속하며 표를 사려하고 국민을 상대로 한 퍼주기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아무도 세금을 더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결과적으로 아무 발언권 없는 미래 세대에 모든 부담이 전가되기 마련이다. 유럽과 아시아, 미국을 막론하고 모든 민주 국가의 빚이 늘어만 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요즘 한국에서 반값 등록금 논쟁이 한창이다. 과도한 등록금으로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등록금을 반값으로 깎아 해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다. 이왕 깎을 바에는 반값보다 공짜로 하는 것이 어떤가.
지금 한국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0%로 세계 1위다.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을 제외하고는 비싼 등록금 내고 다녀봐야 졸업 후 취직이 되지 않는다. 빚만 쌓이고 실업자로 놀고 있는 졸업생 입장이 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태에서 학비를 깎으면 그동안 돈 때문에 대학에 못 가던 학생까지 몰려들어 졸업 후 무직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 대학 등록금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대학 미래 재정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재단 돈을 학생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을 받아 늘리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고려하면 10년, 20년 후에는 대학 입학생 수가 급속히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학 폐교 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다. 지금도 지방 대학은 교수들이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술대접을 하며 고교 교사들을 만나는 것이 연례행사라 한다.
유럽의 경제 강국 독일의 경우 대다수 대학 교육이 무료지만 대학을 가는 학생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직업 교육을 받고 바로 직장에 투입된다. 한국 국민과 정치인들은 반값 등록금 노래만 부를 것이 아니라 무직 대졸자를 이렇게 양산하는 현행 제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일 때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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