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강수진.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와 현역 프리마 발레리나를 사진으로 만난다.
오늘(3일) LA 한국문화원(원장 김재원)에서 개막되는 공연예술 사진작가 이은주와 최시내 사진전은 세계 최정상에 오른 두 한국인 예술가의 가장 아름답고, 친밀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승화시켜 보여준다.
모녀 사진작가 최시내(왼쪽)와 이은주.
백남준 초상화판권 소유자
유작 ‘뷔페탈 전차’ 첫 선
발레리나의 다양한 모습 등
아날로그로 포착한 대작들
1992년 피아노 퍼포먼스를 벌이는 백남준.
무대 위에서 연습 중인 강수진을 찍은 최시내의 작품.
더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사진작가 이은주와 최시내가 모녀 사이라는 것. 한국의 공연무대를 누비는 거의 유일한 여성 사진작가들이라 해도 좋을 두 사람은 각각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과 강수진의 모습을 촬영해 왔으며, 공식 초상권과 판권을 갖고 한국 최초로(아마 세계 최초일지도) 모녀 사진전을 열게 됐다.
지난해 10월 서울과 도쿄에서 시작된 이 사진전은 2월에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된 후 LA로 왔으며 오는 16일 문화원 전시가 끝나면 6월25일부터 7월23일까지 다운타운의 표 갤러리 LA로 옮겨가 다시 한번 작품전을 연다. 서울과 일본은 물론 뉴욕 전시에서 수많은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룬 이 사진전에 대해 이은주씨는 “사람들이 백남준의 작품은 많이 봤지만 그의 얼굴, 행동, 일상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며 너무들 좋아한다”고 말하고 “일종의 사진 다큐멘터리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0여년간 수많은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의 공연사진을 찍어온 이은주씨는 고 백남준 선생이 유일하게 ‘판권’을 준 백남준 초상 사진가다. 그의 마지막 전시인 2000년 뉴욕 구겐하임 전시도 이씨가 유일하게 전체를 기록으로 남겼고, 5년 전 장례식까지 촬영함으로써 백남준의 삶과 예술, 죽음을 사진으로 조명한 유일한 사진작가가 되었다. “이번 사진전은 백남준 5주기를 맞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한 그는 “장례식 사진은 아직은 내놓을 때가 아닌 것 같아 10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와 백남준의 인연은 1992년 ‘춤의 해’ 행사에서 이씨가 백남준과 무용가 김현자의 퍼포먼스 장면을 찍으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초상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씨가 사진을 찍자마자 찾아가 초상권에 사인해 달라고 한 것이 백남준의 주의를 끌었고, 그때 이후 사진을 찍을 때마다 초상권에 서명을 받으면서 남다른 친분으로 이어져 백남준은 이씨에게 초상권과 판권을 일임하는 서명을 해주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이은주와 최시내는 각각 20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모두 필름으로 찍은 아날로그 사진들이며, 문화원 공간이 커서 대작들로 준비했다니 아주 볼만한 전시회가 될 것 같다. 또 전시하지 못한 작품 100여장을 슬라이드로 상영할 예정이라 두 아티스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백남준의 삶과 예술’은 그가 생전에 작업하던 모습, 1992년 피아노를 부수며 퍼포먼스 하는 장면, 휠체어 타고 스케치하는 모습, 구겐하임 전시회 등 약 15년 동안 이씨가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찍은 사진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특히 표 갤러리 전시회에서는 백남준이 자택 2층에 설치해 놓은 ‘뷔페탈에 떠있는 전차’라는 작품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백남준의 유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지난 2월 뉴욕 전시회 오프닝에서 만난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이씨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집으로 데려가 처음 공개한 작품으로 백남준이 타계하기 직전에 만들었다고 한다.
“백남준 선생의 집은 생전에도 여러 번 가봤지만 이 작품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2층에 설치한 철로에 노랑 빨강 파랑색 객차를 매달고, 그 안에 인형을 집어넣은 모습이 얼마나 천진하고 예쁘던지요, 그 분의 동심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백 선생은 병으로 쓰러진 후에도 삶에의 강한 애착을 보이셨는데 이 작품도 그런 희망을 안고 만든 것 같습니다”
백남준의 자택에 걸려 있는 유작 ‘뷔페탈에 떠있는 전차’. 구보타 시게코 여사의 허락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 허락도 받아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뷔페탈은 독일에 있는 도시 이름. 백남준은 자신이 예술활동을 시작한 독일에 대해 깊은 향수와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말년의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독일을 그리워하며 작품으로 남긴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강수진의 예술세계’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공연한 4개 작품 ‘카멜리아의 여인’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찍은 사진 20점을 소개한다. 카멜리아 여인은 강수진이 세계 정상의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을 무려 열 번이나 갈아입으며 공연하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완벽한 몸짓과 열정, 예술혼을 훌륭하게 잡아낸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최신애의 작품 ‘카멜리아의 여인’
“공연예술은 순간의 역사입니다. 공연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가 버리고 오직 사진으로만 남길 수 있죠. 그렇게 중요한 작업이지만 무대사진 찍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끈기와 열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춤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음악과 안무를 모두 알아야 함께 움직이며 찍을 수 있고. 리허설부터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공연장, 예술가, 주최 측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어떨 때는 안무가나 협찬 받은 의상 브랜드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답니다”
30여년 동안 황무지 같던 공연사진의 길을 애써 닦아놓은 것이 아깝다 했는데 딸이 대를 잇게 돼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럽다는 이은주씨는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제3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국내외에서 개인전 30여회를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신구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한 최시내씨는 대학시절부터 무대사진에 뛰어들어 지난 10여년간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무대사진을 촬영해온 촉망받는 무대사진작가로, 강수진 사진만 10여년 촬영하고 있다.
<전시 정보>
●LA 한국문화원(5505 Wilshire Blvd. LA)
-기간: 6월3∼16일
-개막식: 6월3일 오후 7시
●표갤러리(1100 S. Hope St. #105 LA)
-기간: 6월25일∼7월23일
-개막식: 6월25일 오후 5시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