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서덜랜드(왼쪽)가 자신이 창단한 타입-1 사이클링 팀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년 사이클리스트 필 서덜랜드
“이 아이는 스물다섯 살 이전에 세상의 빛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서른 이전에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필 서덜랜드가 생후 7개월 때 주치의로부터 받은 현대판 ‘신탁’은 이렇듯 가혹했다. 흔히 청소년 당뇨병으로 알려진 제1형 당뇨병(Type-1 diabetes)을 지닌 채 태어난
‘원죄’탓이었다.
병명 딴 ‘타입 1-’ 사이클팀 창단
환자 5명 포함된 20인 선수단 꾸려
온몸으로 장애 밀며 승리 향해 질주
그러나 그에게 떨어진 두 가지 참혹한 ‘예언’ 가운데 하나는 이미 빗나갔다. 그의 시력은 멀쩡하다. 결정적인 두 번째 예언의 유효시한도 내년이면 끝난다.
서른 살이 되는 해인 2012에 거는 서덜랜드의 소망은 살아남기가 아니라 그가 창단한 사이클 팀이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투어 드 프랑스(Tour du France)의 출전권을 따내는 것이다.
서덜랜드의 프로 사이클팀 이름은 Type 1-사노피-아벤티스. 앞부분은 그를 장애인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제1형 당뇨병을 뜻하고 뒷부분은 팀의 후원사이자 연구 파트너인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온 종일 혈당치를 살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그에게 자전거는 ‘자유’와 ‘보상’을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귀찮고 성가신 수치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고 자신의 한계를 조금 더 멀리 밀고 나간 날에는 캔디바와 한쪽의 케익을 맛보는 호사까지 누릴 수 있었다. 사이클링을 통해 그는 자신의 병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운동을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법을 익혔다.
그가 자전거로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열 살 때의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다보니 건강이 개선됐고, 그러다보니 평소에 할 수 없던 일들이 하나 둘씩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서덜랜드가 프로 사이클 팀을 만들게 된 것은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조지아대학 사이클 선수로 활동할 당시 경주에 출전했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타주 출신 선수를 만난 게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당시 서덜랜드는 제1형 당뇨병에 관한한 전문의 뺨치는 식견을 쌓아둔 터였다. 특히 사이클링과 당뇨병과의 상관관계라면 ‘1박2일’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었다.
반면 사이클 경주에서 그가 만난 동년배 ‘환자’는 한 마디로 아는 게 없었다. 이 친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대충 간추려 설명하던 서덜랜드는 사이클링과 당뇨병을 결합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아 자신을 포함한 당뇨병 환자들이 프로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대신 당뇨병 치료제나 관련 제품 개발과정에 필요한 임상실험 대상으로 그들의 ‘몸’을 제공한다는 번갯불 같은 구상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당뇨병 관련 의약품이나 기구를 생산하는 제약회사들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관계자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우표값과 명함비로 투입한 400달러의 투자금이 거의 동나갈 무렵, 프랑스에 본부를 둔 초대형 다국적 제약회사 사노피-아벤티스의 미국 당뇨병 치료부문 담당 부사장 데니스 얼바니아크가 후원 의사를 전해 왔다. 얼바니아크는 “당뇨병 환자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본보기를 찾고 있던 차에 서덜랜드의 편지를 받았다”며 “힘겨운 도전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온몸으로 이를 밀쳐내면서 ‘성공’을 넘어서 ‘승리’를 향해 질주하는 그의 태도가 우리가 원하던 역할모델의 컨셉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프로 사이클링 팀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창단했지만 이제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이클링은 지난 100여년 간 선수들의 약물사용 시비로 얼룩진 스포츠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들은 독극물인 비소에서 코케인, 카페인, 스테로이드는 물론 혈액 내 적혈구 생성을 원활히 해주는 약물인 에리트로포에틴(EPO)과 성장호르몬인HGH까지 동원했다. 이 때문에 투어 드 프랑스 같은 큰 대회가 열린 곳에서는 시민들이 주사기 차림을 한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대회 운영위원회의 조사관들이 선수들의 숙소를 돌며 쓰레기통을 수거, 내용물을 검사하는 촌극이 연출된다.
서덜랜드의 타입-1 팀 소속 선수 20명 가운데 당뇨병 환자는 다섯 명. 이들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운영위원회의 특별 허가를 받아 하루에 다섯 차례씩 스스로의 팔뚝에 인슐린 주사기를 꽂는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다른 팀 선수들의 눈총도 각오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타입-1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의 역량을 지닌 스타급 선수들을 보유하지 못했다. 좀 더 솔직히 평가하자면 구간 우승도 힘들다. 서덜랜드도 당뇨병과는 무관한 다리 부상으로 2년 전 선수생활을 접고 팀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 시즌을 낙관한다. 2년 전 스페인 팀에서 타입-1으로 옮겨온 ‘환자 선수’ 야비에르 메기아스(27)가 물이 올라 스타급 ‘대어’로 발돋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기아스는 인슐린 주사를 놓을 때마다 동료선수들의 눈치가 보여 전전긍긍하다가 타입-1 팀 소식을 듣고 스스로 서덜랜드의 날개 밑으로 찾아들었다. 서덜랜드는 올해 메기아스가 메이저 대회의 한 구간 우승이라는 ‘대형사고’를 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이면 서덜랜드는 서른이 된다. 의사 말대로라면 그는 2012년을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그가 사망할 확률은 타입-1이 내년도 투어 드 프랑스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할 가능성보다 훨씬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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