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과 환호 속에 설레고 익사이팅했던 대학졸업의 계절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졸업식이 끝나면서 지난 몇 주 미 전국 대학에서 배출된 165만명의 졸업생은 당장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가거나 부모 집 지하실로 돌아가거나;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문하거나 주문받거나…물론 취업난을 빗댄 우스갯 소리지만 뼈가 느껴져 듣기에도 아프다.
2011년 졸업생의 취업사정은 작년보다 훨씬 호전될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주가도 오르고 소비자 신뢰지수도 높아졌으며 기업의 이익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지난 1년 각종 지표들이 보여준 경제는 대체로 장밋빛이었으니까. 전국대학·고용주협회도 2010년 졸업생보다 19%가 더 취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40대1이었던 취업경쟁이 금년엔 21대1로 낮아졌다는 뜻인가. 올 졸업생들의 ‘잡 마켓’ 체감지수가 아직도 한겨울인 것은 당연하다.
영문학 전공한 마켓의 캐쉬어, 커뮤니케이션 전공 웨이터, 화학 전공 바텐더, 클래식 전공 전화교환, 그리고 월마트 청소하는 이탈리아학 전공 대학졸업생…그들 스스로 공포의 ‘호러 스토리’라고 부르는 취업난 관련 사례들은 끝없이 많다.
4년 내내 편안히 공부만 한 아이들이 아니다. 재학중 80%이상이 파트타임으로, 25%는 풀타임으로 일했으며 90% 이상은 방학동안 서머잡을 뛰며 학비를 벌었다. 그런데도 80%이상이 졸업과 함께 갚기 시작해야 할 수만 달러의 학자금 대출 빚을 안고 있다. 자신의 ‘열정’을 바칠 ‘이상적인’ 일자리를 기다리며 저임금 단순직은 마다할 처지가 못 된다는 뜻이다.
전국 대학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럿거스대학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2006~2007년 졸업생들의 풀타임 취업률은 90%였다. 2010년엔 56%로 폭락했다. 취업자 중 절반은 대학 학위가 필요 없는 단순직이다. 취업자의 평균초봉으로는 대출 상환은커녕 렌트와 자동차, 식비 등 최저생계 꾸리기에도 숨이 찬다.
집 저당 잡히고 은퇴연금 허물어 뒷바라지하면서 명문대를 졸업시킨 ‘실업자’ 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심정도 본인들 못지않게 답답하고 불안하다.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진다 : 경제 탓인가. 차세대 교육보다 해외전쟁에 훨씬 더 많은 세금을 쏟아 붓는 정부 탓인가. 대학교육의 잘못된 방향 탓인가. 모두 일리가 있는, 그래서 계속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탓’들이긴 하다. 그러나 한편 돌아보면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 좋은 직장에서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의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한인대학교수 한 분에게 미취업 졸업생들을 위한 조언을 물어보았다. 수십년 미 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들의 취업을 도운 경험을 가진 그는 다른 측면을 짚어 주었다.
“비정하게 들리겠지만”이라고 전제한 그는 “경제 탓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학 다니며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고 커리어에 대해 생각해본 아이들 중엔 실업자가 없습니다. 전공 선택에서 부터 취업을 위한 네트워킹과 플랜 등을 차근차근 준비해온 아이들은 경기와 상관없이 100% 취직을 합니다. 그건 ‘책임감’의 문제입니다. 부모가 성적보다 훨씬 중요하게, 어려서부터 심어주었어야 할 책임감이지요”
상당수 한인학생들이 “어떻게 되겠지…”하며 장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걸 그는 안타까워했다. 대학 4년 중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자립을 위한 빈틈없는 준비인데 졸업 후 내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절박한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다. 주요 원인으로 그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까지 채워주는 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과보호를 지적했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한인 여학생들에 의하면 외모는 한인 남학생들이 제일 잘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상대로는 꺼려진답니다. 한인 어머니들의 지나친 아들 사랑이 스스로를 책임질 줄 모르는 무능한 성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지요”
대학입학은 고교입학과 다르다. 자립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때다. 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자신이 사는 모양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조언과 정보가 제공되는 곳이다. 조언과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러나 책임감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전공부터 신중하게 정해야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취직이 힘든 인문계를 택하고 싶다면 결정전에 최소한 학과장에게 졸업 후 어떤 일자리가 있는가 정도는 미리 물어야 한다. 실제로 럿거스대학 조사에서 많은 응답자들이 이 부분을 후회했다. 대학엘 다시 다닐 수 있다면? 48%가 전공 선택에 보다 신중하겠다, 47%가 전공분야에서 인턴십과 파트타임 일을 하겠다, 38%가 재학 중 일자리 찾기를 빨리 시작하겠다고 답했다. 졸업생 뿐 아니라 재학생과 부모들도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대학이 잘먹고 잘살기 위한 취직준비 학원은 물론 아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배우고 꿈꾸는 곳이다.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기술을 가르치는 실용적 교육”을 강조하는 빌 게이츠의 주장도, “창의력을 춤추게 할 폭넓은 인문학 교육”을 예찬하는 스티브 잡스의 교육철학도 똑같이 필요한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성공한 성인으로 가는 첫 걸음은 자신의 생계에 대한 책임이다. 가장 기본적인 책임조차 지지 못하면서 역설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이상과 꿈’은 허황하게 들린다.
취업난은 아직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명문대의 졸업장을 받아들고도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초조해한다는 졸업생들 소식에 우리가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절박한 책임감”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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