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의 법률사무실 식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영어 단어시험으로 공포에 떤다.
지난 2월부터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루에 새 단어 하나씩 달력에 적어놓고 공부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부로 시작하다가 시험이 없는 공부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필자가 일방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보기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매달 새로 배운 단어들 중 8개를 무작위로 선정해 스펠링과 뜻을 적어내는 시험을 치른다.
뭔가 벌칙도 있어야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시험 치루는 맛이 날 것 같아 가장 성적이 나쁜 수험생들을 변호사들과 직원들 중에 각 한 명씩 추려 적절한 수준의 기부금을 점심기금 모금용으로 강요했더니만, 기부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모두 사력을 다해 공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사실 시험을 볼 때는 바로 그 전 달의 단어들뿐만 아니라 맨 처음서부터의 단어 모두를 보기 때문에 지난번 시험에는 세 달치 단어들을 한꺼번에 공부하고 시험보는 좋은 수확을 거둘 수가 있었다. 그 시험 준비를 위해 평소에 시험 성적이 최하위였던 직원 한 명은 그 전날 한 시간 이상 공부를 해 다음날의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쾌거를 거두기까지 했다. 직원들은 겉으로는 시험을 더 이상 안 보면 안 되겠냐는 애교 섞인 항의도 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시험 보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시험 성적 꼴찌의 수험생, 특히 꼴찌 변호사를 놀리는 재미가 제법 짭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 온지도 이제 거의 37년이 되어간다. 이곳에 17세에 와서 10학년을 반복하며 3년간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후 대학과 법과대학원도 다녔기 때문에 영어공부도 제법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27년 간의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평소에 영어로 쓰인 서류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적잖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대하는 단어들도 있고 이전에 알았는데 확실히 뜻이 기억나지 않거나 전혀 생각나지 않는 단어들을 종종 접한다. 오히려 사실 언제부터인가 필자가 읽어야 할 서류들과 읽고 싶은 책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갈수록 모르는 단어들도 같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던 고등학교 때는 영어를 단시간 내에 정복하겠다는 다짐도 하며 어느 정도 자신도 하는 오만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온 후에는 절대로 본토박이처럼 영어를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어 숫자가 많게 느껴졌고 그로 말미암아 당연히 모르는 단어도 많은 것 같다.
한 때는 모르는 단어들이 제법 된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지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 것은 당연한 것이고 대신 발전을 위한 도전과 자극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조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본토박이 미국인들이라고 모든 단어들을 다 아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단어들을 이곳 태생의 미국인들이나 필자의 아들 녀석들도 모르는 것을 발견할 때 괜히 흐뭇해 하기도 한다.
영어공부란 어느 정도 성장해서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면 누구나 겪는 장애이고 그리고 두고두고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이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사실 죽을 때까지 계속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힘들다고 지레 겁먹고 손을 놓고 있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모르는 단어를 접할 때 일단은 바로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부터 기르자. 필자의 집 도처에 사전들이 늘려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나 혹은 신문을 보거나 방송을 듣는 가운데에서 생소한 단어나 표현을 대할 때 바로 메모해 두었다가 집에 가서 뜻을 찾아보자. 사전에서 못 찾는 표현은 그냥 컴퓨터 구글 검색란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배운 단어는 사용하도록 노력해보자. 직접 사용해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루에 하나씩 새로 접하는 단어들을 보면서 배움의 희열을 느낀다. 2월 이전에는 몰랐던 schadenfreude(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김), ersatz(대용품), misanthrope(인간을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chiaroscuro(명암의 배합)가 그런 단어들인데, 이런 단어들을 지금은 안다는 것에 괜히 가슴이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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