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재무부에서 발행하는 ‘Circular 230’는 연방국세청(IRS)과 관련된 일을 하는 회계사나 변호사가 지켜야 할 규정집이다. 제 10.22조는 수임 받은 업무를 정확히 이행하기 위하여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고객의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상당한 주의’란 고객에게서 받은 자료를 감사에 준하는 방법으로 검토하라는 뜻이 아니다. 고객에게 관련 법규를 주지시키고, 이에 따라 자료를 준비했는지 적절히 질문하라는 뜻이다.
회계사나 변호사의 일차적 책임은 고객에게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완료된다. 고객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할 책임은 없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금보고 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해외 금융계좌 신고 대상이 될 만한 거래의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 이 경우 회계사는 신고해야할 자산이 있는지를 고객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2009년 자진신고 참여자중 상당수가 세금보고서를 작성해준 회계사를 핑계로 벌금을 경감 받아 보려 노력하고 있다. 회계사가 세금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해외 금융자산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엄청난 불이익이 있을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올바로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장에서 세금보고서 작성을 담당하고 있는 회계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법을 몰랐고, 회계사로부터 적절한 조언을 받지 못했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에 관련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회계사들은 “안 해도 된다” 또는 “적발되지 않는다”는 조언을 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동의하며 벌금을 경감해주는 IRS 감사요원도 종종 있다.
법을 몰랐다는 것은 면책의 사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자격증을 소지한 회계사나 변호사의 조언을 따랐을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세금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세금을 내지 않았을 경우는 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간주하고 벌금을 경감해 준다. 재무부 규칙 제 301.6651-1조의 “납득할만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 관한 구제 규정이다. 법원도 같은 시각으로 벌금을 경감시켜 주려 노력한다.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정황 증거상 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면 납세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곤 한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는 금융비밀법의 절차와 규정을 따르지만 IRS가 권한을 위임받아 집행하고 있다. 세법상의 구제조항이 적용돼서 벌금을 경감받기도 한다. 하지만 2011년 자진신고 참여자는 이런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 IRS가 발표한 자진신고 관련 규정에 따르면 자진신고 참여자는 납득할만한 사정을 이유로 벌금을 줄여달라고 요청할 수 없고, IRS 감사원도 벌금을 줄여 줄 재량권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2011년 자진신고 참여시 불이익이 더 있다.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소득이 세금보고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 부동산의 가치도 미신고 금융자산에 더해져서 벌금이 책정된다는 것이다. 소득을 빠짐없이 보고한 경우에만 자진신고의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이렇듯 벌금의 경중만 놓고 본다면 자진신고 참여가 미신고 금융계좌를 정리하는 최선의 해법이 아닐 수도 있다.
밀린 해외 금융계좌 신고에는 정해진 해법이 없다. 금융자산의 규모나 역사는 물론 납세자의 수입, 학력 및 여타 재산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2011년 자진신고 프로그램이 발표된 금년 2월 이후 밀린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일반 납세자는 물론 회계사들의 문의도 현저하게 증가했다.
몰랐다거나 안 해도 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는 핑계는 2011년 이후에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IRS가 주도권을 갖고 감사를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방법으로 과거를 해결해 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미 양국 간의 세무정보 교환이 점점 더 긴밀해져 감을 주목해야 할 때이다.
최재경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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