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못마땅해 하는 한국 신문들의 한 습관은 5.16 군사혁명의 제2인자였던 김종필 때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예를 들면 JP의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라는 기사 제목을 꼽을 수 있다. 그러더니 김영삼의 YS, 김대중의 DJ, 그리고 이명박의 MB로 이어진다.
아마도 한국 신문들이 일본으로부터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부르는 악습(?)을 배웠으리라는 짐작은 최근에 뒤집어졌다. 불란서 신문 하나가 DSK OUT이라는 주먹만 한 여섯 글자의 표제를 달았기 때문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불란서 대통령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이름 첫 글자를 쓰는 관습이 불란서에서 유래한 모양이다.
사르코지 불란서 대통령은 인기가 없기 때문에 스트로스 칸이 사회당 후보로 내년에 출마하면 틀림없이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가 지난 토요일 뉴욕 어느 고급 호텔의 종업원에게 성폭행을 하고 나서 파리로 날아가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 순간까지 63세인 스트로스 칸의 이력은 화려했다. 그는 경제학자, 변호사, 대학교수에다 장관직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IMF의 총재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의 유로권의 나라들의 금융 구제에 탁월한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불란서 상류 인사들이 파티에서 심심해지면 DSK를 언급하게 되며 그 결과 그의 여성 편력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다시 파티가 활기를 띄게 된다는 보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워낙 정치인들의 바람피우는 것이 다반사처럼 여겨지는 불란서에서도 그의 사생활은 복잡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그가 2007년 IMF 총재로 임명되었을 때도 그의 친구의 딸이자 기자 겸 작가인 여성이 그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 하다가 간신히 몸싸움 끝에 피할 수 있었다는 폭로가 있었다. 또 IMF에서는 기혼자인 어느 여성 부하에게 이메일로 집요하게 달라붙어 혼외정사에 이른 사례도 있어 IMF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사히 위기를 넘겼던 스트로스 칸은 이번만큼은 큰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우선 하루에 방값이 3,000불인 그 호텔의 메이드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32세 여성인 바 그녀는 방이 빈 줄 알고 치우러 들어갔다가 알몸이던 DSK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흐트러진 자세로 그가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성범죄 전담 형사들도 그의 신빙성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DSK를 체포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19일에는 뉴욕의 대배심원(grand jury)이 그를 7가지 성범죄 관련 죄목으로 기소를 했다는 것도 그에게 불길한 징조다. 구성원이 12명 내지 23명이라서 재판 때 유무죄를 평결하는 소배심원(petit jury)과 구별되는 대배심원도 역시 시민들로 구성된다. 그 역할은 형사 사건의 혐의와 증거들에 대한 피해자와 검찰의 주장을 듣고 피고를 재판정에 세울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기소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트로스 칸이 아무리 형사 사건에서 미국에서 제일 잘 한다는 변호사 몇을 세운다고 해도 유죄 판결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간 또는 다른 성범죄 혐의에 대한 유효한 변호 재료는 쌍방 합의 아래서 이루어진 성관계라는 주장이다. 그 호텔 메이드가 며칠 궁리하다가 신고를 했다면 성립될 수도 있는 변론이겠지만 즉각적으로 했다는 사실에 더해 복도에 설치되어 있을 시큐리티 카메라에 잡힌 그의 모습은 스트로스 칸의 주장을 격파시키고도 남을 것으로 짐작된다.
19일에 있던 뉴욕 Supreme Court(지방법원·뉴욕에서만은 제1심 법원을 Supreme Court이라고 부른다)의 히어링에서 판사는 스트로스 칸을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재판 때까지 석방을 시키도록 결정했다. 100만불 보석금을 내고 그의 셋째의 부인과 같이 소유하고 있는 DC 타운하우스를 담보로 500만불을 재판 출두 보증금으로 거는데 더해 24시간 그를 경호하는 무장 요원을 고용해야 하며 전자 팔찌를 장착하고 있어야 된다는 게 조건이었다.
그런데 월세가 1만5,000불 되는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 방을 얻으려는 게 피고의 악명 높음으로 쉽지가 않은지 금요일 오후까지도 그는 유치 감옥에서 풀려나지 않았다. IMF 총재직에서 사직한 DSK는 일시불로 35만불을 받고 매년 30만불 이상 연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보도이다. 재판 때까지 무장 경호원을 고용하는데 한 달에 20만불씩 소요된다니까 그자의 재산이 그만큼 축이 날 것이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25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지게 될 테니까 그에게는 연금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격언이 꼭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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