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출석하는 와싱톤 한인교회에서 지난주부터 5주간에 걸쳐 ‘정의’를 주제로 연속 설교시리즈가 진행 중이다. 김영봉 담임 목사님이 매년 봄철이면 기존의 신자가 아닌 분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전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책이나 영화 등 비종교적 문화이슈를 성경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시는 문화영성 프로젝트가 올해로 5년째이다.
이번에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저술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다루는 주제를 성경적 시각으로 조명해 보시겠다고 한다. 목사님은 정의로운 사회의 모범이었던 미국이 이제 그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 강단에서도 정의가 침묵을 강요당하며 복음은 무력해져가고 있다는 거다.
지난주에 결론적으로 강조하신 말씀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역 유권자들을 대변해 교육행정 전반을 감독하는 선출직 교육위원의 책임을 맡은 필자의 입장에선, 민의라는 ‘시대의 풍조’에 맞추어 기존 법체계 안에서 질서유지에 가능한 충실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이를 거부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도전이 되는 말씀이었다.
선출직 공무원이기에 앞서 평소 변호사가 직업이기도 한 필자는 사실 직업상 항상 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가까운 위치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요즈음 훼어팩스 교육위원회가 다루고 있는 가장 큰 이슈들도 바로 ‘정의’에 관한 부분이다. 유치원의 종일반 확대와 학생들의 훈육에 관련된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유치원 종일반 문제는 다음 학년도 예산을 결정하는 다음 주 정기회의에서 결론이 날 것이지만, 학생훈육에 관한 이슈는 앞으로도 몇 달 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두고 씨름해야 할 것 같다.
유치원 종일반 이슈는 예산 분배에 대한 원칙과 직결되어 있다. 메릴랜드주와 달리 버지니아주에서는 종일반 프로그램의 제공은 학군의 재량이다. 사실 그래서 훼어팩스 카운티가 유치원 종일반 프로그램을 카운티 전체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이 겨우 약 6년 전 일이다. 그리고 이 결정의 시행을 3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 두 해는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경제침체로 인해 재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셋째 해에 확대규모가 축소되었고, 급기야 지난 2년 동안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유치원이 아직도 종일반이 되지 못한 나머지 37개의 초등학교에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3년 계획을 세우면서 순서를 결정할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학교를 우선했는데 이것이 과연 교육형평성이라는 기준에 적합하며 정의로운 결정이었느냐는 도전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내년에는 나머지 모든 학교들에게도 종일반 유치원이 확대될 전망이지만 정의로운 예산 배분 원칙에 관한 문제에 대해 또 한 번 고민하게 해 주는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이슈의 어려움은 카운티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생훈육에 관한 이슈는 얼마 전에 불행하게도 두 명의 학생들이 징계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살을 한 일이 있은 후에 불거져 나왔다.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까지의 처벌이 정의로운가가 뜨겁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징계의 근본 목적에 대한 검토에서부터 시작해, 징계대상이 된 해당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징계절차상 보호받아야 하는 인권에 대한 논의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징계대상 학생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의 보호받을 권리는 간과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징계결정을 내림에 있어 소수의 징계대상 학생들의 권리와 그들의 잘못된 행위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될 다수의 일반 학생들의 권리 사이 어딘가가 적정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경계인지를 찾는데 동료 교육위원들, 교육청 책임자들과 함께 고심하는 중이다.
‘정의란 이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그것은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나 보는 관점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 전쟁 중이던 2차 대전 기간 중 일본계 미국인 주민들을 격리 수용시킨 인종차별적 행위가 당시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는 정당한 국가공권력의 행사로 당연스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도 ‘정의란 이것이다’라고 자신의 책에서 시원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정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수록 각자 자기 나름의 고유한 기준에서도 스스로 정의롭지 못한 부분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자신의 행위와 생각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개인 하나하나가 일상의 생활에서 조금씩 좀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개선되어 나갈 때 사회 전체도 좀 더 성숙한 정의로운 사회로 다가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