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결혼식을 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신부가 그러나 돌연 사라졌다. 그녀는 트위터를 통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 가운데 한 문장이 화근이 돼 결혼식 날 체포된 것이다. “분노한 젊은이들이여, 전진하라”는 단 한 줄의 문장 때문에. 그녀의 약혼자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역시 철창신세가 된 것이다.
벌써 여섯 주 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면 경찰이 나서서 막는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끌려간다. 이런 식으로 구속된 사람만 벌써 100명이 넘는다.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사람은 500여명을 헤아린다.
대학생 상대 성경공부가 시작이었다. 그 모임이 커지면서 교회로 발전했다. 교인 대부분은 지식인에, 전문직 종사자다. 이처럼 성경공부 모임이 메가-처치로 발돋움 하자 바로 당국의 박해가 따랐다.
예배 장소로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쫓겨났다. 새로 건물을 빌리거나 사들이려고 할 때 마다 교묘한 방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교인들은 직장에서 해고 위협에 시달리게 되고.
박해는 갈수록 노골화됐다. 최근 들어서는 야외 예배조차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부활절인 지난 4월24일. 약속된 야외 예배장소에는 수많은 경찰관들이 배치됐다. 그리고는 교인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일요일 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북경시 중관촌에 있는 서우왕(守望)교회가 겪고 있는 수난이다. 이른바 ‘가정교회’로 불리는 중국의 지하교회에 대한 박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겪고 있는 시련은 예외적이다. 교회지도자는 물론이고 평신도를 타깃으로도 당국은 조직적이고, 또 아주 집요한 박해를 가하고 있어서다.
왜. 명확한 동기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집히는 게 있다면 이 교회가 지닌 상징성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도시 엘리트 계층의 교회’- 이것이 지니는 상징성에 당국은 예민한 반응과 함께 집요한 박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여튼 진작부터 조짐은 불길했다. 중국의 양심적 지식인, 인권운동가, 그리고 교회 등에 또 한 차례 시련기가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구속을 기해 그 탄압의 수위는 한 층 높아졌다.
2011년 벽두. 저 멀리 중동지역에서 재스민 혁명이 발발하면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몰아닥쳤다. 세계적인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구금이 그 절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무 법적인 근거도 없이 당국에 체포된 것이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가택연금을 당한다. 역시 이유도 모른 채 린치를 당한다. 수백, 수천의 ‘중국의 양심’들이 당하고 있는 수난이다. 외국기자들에게도 폭행을 가하기 일쑤다. 북경주재 미국대사관이 주최하는 모임도 당국의 방해로 무산되곤 한다.
그 박해의 규모가 천안문사태 이후를 능가한다. 그 기간도 그렇다. 길게 보면 올림픽 때부터 조직적 박해가 시작됐다. 그 방법도 점차 거칠어지고 있다. 영장 없는 구금은 예사이고 구타에, 고문 등 날이 갈수록 더 추악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박해는 최근 들어 더 가중되고 있다.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은 물론이고 교회지도자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들도 구금에,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재스민혁명에 대한 과잉반응이 대대적 검거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주로 서방세계에서 나오는 진단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무엇인가 상당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대외 이미지 같은 것은 돌볼 여유도 없이 조금만 사회불안 증세만 보였다 하면 가차 없는 탄압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관측이다.
만연한 부정부패에,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악화되고 있는 환경오염 등으로 대중의 분노는 높아만 간다. 70%가 넘는 중국인들이 현 상황에 비관적이란 갤럽 여론 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 공산당 지도부는 세대교체기를 맞고 있다. 북경당국이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탄압정책은 그러나 때로 의도와 정반대 효과를 가져 온다. 서우왕교회 탄압이 바로 그 예가 되지 않을까. 신도수가 6~7000만으로 헤아려지는 중국의 ‘가정교회’ 대표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공개적으로 우방궈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에게 제출했다. 말하자면 공산당 집권세력과 교회 양심세력이 정면대결 양상을 보이게 돼 하는 말이다.
어떤 방향으로 결말이 날까. 아직은 두고 볼일 이다. 그렇지만 뭔가 한 가지가 머리를 스친다. 아마도 대변혁의 예고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다.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됐다. 탄압을 받으면서 참가자 수는 계속 늘어 수 만 명이 됐다. 그들이 마침내 촛불을 들고 나섰다. 그 날이 1989년10월9일이다. 그리고 한 달 후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내렸다. 옛 동독지역 라이프치히에 있었던 성 니콜라이 복음주의 루터 교회 이야기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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