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다 보면 자주 경험하는 일이 있다. 세상의 끝인 듯 완강하게 앞을 가로막는 산봉우리를 죽을힘을 다해 오르고 나면, 기쁨은 잠시 - 그 너머로 다시 새 봉우리가 앞을 막아서는 경험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고, 부모로서 자녀교육이 또한 그러하다. 산 너머 산이다. 이 산에서 통하던 방식이 다음 산에서는 안 통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인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한주 영어권의 우리 2세나 다른 아시안 2세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화제가 된 기사가 있었다. 뉴욕 매거진의 지난주 커버스토리 ‘종이호랑이(Paper Tiger)’이다. 웨슬리 양이라는 한인 2세가 쓴 기사로 학교 안에서는 펄펄 날던 아시안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로 진출하고 나면 왜 별 볼 일이 없는가라는 문제를 다뤘다.
‘호랑이’는 지난 1월 출간된 책 ‘호랑이 엄마의 승전가’의 연장선. ‘호랑이 엄마’ 밑에서 자란 자녀들을 의미한다. 책은 예일 법대의 에이미 추아 교수가 10대의 두 딸을 키운 경험을 기술한 자녀교육 회고록이다. 그는 미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너무 무르게 키운다고 비판한다.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느라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도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계 2세인 추아 교수는 부모가 ‘호랑이’처럼 엄해서 자녀가 100%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에게 틈을 주지 말고 강압적으로 몰아붙여야 타고난 능력이 계발되고, 그래야 일류학교에 진학해 성공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공개한 ‘호랑이 엄마’식 교육 에피소드들은 때로 너무 가혹해서 ‘아동학대’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딸이 이번에 하버드 입학허가를 받자 비난은 주춤해졌다. “아이 장래를 생각하면 그렇게 닦달을 해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회의 때문이다.
‘종이호랑이’는 그런 회의에 다시 회의를 제기한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경험의 폭이 좁은 아시안 자녀들이 사회에 나가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부딪친다는 것이다. ‘학교’라는 산에서는 외우고 또 외워 성적 올리는 기술이 유효했지만 ‘사회’라는 산에서는 뭔가 다른 능력이 요구되는데 그런 현실을 숫자가 잘 보여준다.
점수로 입학이 허가되는 공립 명문고교나 대학은 아시안 학생들이 ‘점령’한지 오래 되었다. 아이비리그의 경우는 아시안 비율은 15~20% 선. 아이비리그는 미국 리더십의 산실이다. 그렇다면 미국 최고 리더십에서 아시안이 15%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대기업 임원 중 아시안은 0.3%, 포춘 500대 기업의 CEO 중 아시안은 겨우 9명, 대학 총장 중에서는 불과 2%이다.
한편 실리콘 벨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 1/3이 아시안이다. 하지만 그 지역 25대 기업의 중역 중 아시안은 6%에 불과하다. 중간 관리직까지는 아시안이 많지만 파트너로 발탁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아시안이 어느 정도 승진한 후에는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 혹은 차별, 바로 ‘죽의 천장(Bamboo Ceiling)’ 때문이다. 여성차별에 적용되는 ‘유리천장’에 ‘죽의 장막’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이다.
이것은 실제로 주류사회에서 일하는 우리 2세들이 종종 토로하는 현실이다. 자신은 명문대학 나오고 일도 열심히 했는데 막상 승진 때가 되면 이류대학 나온 백인 동료가 위로 올라가더라는 식이다. 미국의 기업은 수세대에 걸쳐 백인남성들이 지배해온 만큼 기업문화 속에 인종차별요소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안 식 가정교육에 우선 문제가 있다고 커버스토리 ‘종이호랑이’는 지적한다.
아시안들이 어려서부터 배운 것은 어른 말에 고분고분하고, 무슨 일이든 맡겨지면 열심히 하며, 나서지 말고 겸손하라 는 등이다. 이런 수동적 자세는 미국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자질과 거리가 있다. 지도자는 스스로 주도권을 잡는 자세에, 조직 운용 아이디어, 네트워킹 능력, 때로 자기 과시와 자기 홍보가 필요한데 아시안 가정교육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삐걱거리는 바퀴에 기름칠을 한다’고 한다. 자녀들을 언제까지 학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가두고 점수에만 목을 매게 할 것인가. ‘종이호랑이’는 우리 2세들이 성인이 되어 외치는 경험담이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