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서남아시아의 영국 식민지에서 두 개의 나라가 분리 독립했다. 둘 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지독히 가난한 나라였다. 뉴요커의 알카에다 전문기자인 로렌스 라이트는 그 무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
“2차 대전이 끝난 뒤의 미국은 이 두 개의 국가 중 하나를 택해 후원국이 되었다. 그 후 수 십 년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으며 경제는 물론 군사 훈련 및 장비 그리고 정보서비스를 지원했다.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믿을만한 동맹국’ 만들기가 명시된 목표였다. 다른 한 나라는 미국의 적대국들과 제휴하였기 때문에 외면당했다…”
당시 미국이 거부한 나라가 인도였고 선택한 나라가 파키스탄이었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동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60년 동맹이 요즘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둘러싸고 또 한 번 삐걱대며 갈등을 보이고 있다. 자국의 영토에서 사전 통보도 없이 미국의 특공작전이 펼쳐진데 대해 파키스탄은 ‘주권침해’라고 분개하고,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군사도시에서 5년간 버젓이 안주한데 대해 미국은 파키스탄이 그의 은신을 “방조했다”고 의심한다.
파키스탄은 국어인 우르드어(語)로 ‘청정한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계속된 내우외환에 시달린 암울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부딪쳐온 앙숙 인도와의 전쟁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군부는 4번이나 쿠데타를 일으켜 건국 64년 중 절반 이상을 집권했고,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와 군정의 비상사태 선포가 반복되는 와중에서 정적에 대한 암살과 처형이 자행되었으며, 테러전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 지난 10년엔 자살폭탄 공격까지 급증하면서 정정은 불안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부침이 극심했다. 우정이 없는 동맹이었다. 서로 자국의 이해에 따라 언제 동맹이었냐 싶게 낯을 바꿨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냉담한 ‘배신’에 격분했고 미국은 양다리 걸치는 파키스탄의 이중플레이에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
1971년 인도와 전쟁이 터졌을 때, 파키스탄은 방위조약까지 체결한 ‘동맹국’ 미국을 철썩 같이 믿었지만 닉슨은 개입하지 않았다. 카터는 한층 더했다. 인권남용과 핵개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서 제재의 강도를 높였고 군사원조도 중단했다. 그러나 카터말기 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급해진 카터가 내민 손을 외면했던 파키스탄은 새 대통령 레이건과 손을 잡았다. 수십억 달러 원조가 재개되었고 파키스탄은 아프간 내 회교 게릴라를 지원육성하며 ‘미국을 위한’ 대소련 전략을 주도했다.
군사원조가 또 중단된 것은 아버지 부시 시절,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제재였지만 파키스탄의 시각으로 보면 소련의 아프간 철수 이후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이 관심이 식어갈 때였다. 90년대 말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시작하면서 더욱 악화된
양국관계는 9.11 테러 발생과 함께 일대 전기를 맞게 된다.
‘대테러전쟁’ 선포와 함께 파키스탄은 다시 미국에게 ‘중요한 나라’로 부상했다. 수십억 달러의 원조가 재개되었고 군부독재나 인권남용에 대한 비판도 잦아들었으며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제재도 사라졌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또 한 번 꼭 필요한 ‘동맹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서로의 바닥을 들여다 본 후였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언제라도 또 배신할 것으로 불신했고, 미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내통하는 파키스탄의 양다리를 알고도 모른 체 참아야 했다.
파키스탄은 철저한 이슬람 국가다. 종교만이 아니라 사회규범도 이슬람이 지배한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테러그룹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것은 반미정서가 극심한 민심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민심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거액의 원조를 계속 받아내기 위해 미국과 동맹을 이어가면서도 파키스탄 정부가 이중 플레이를 멈추지 않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걸 알면서도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는 한 미국은 파키스탄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지역적으로 미군의 교두보이며 아프간 전쟁을 위한 보급로일 뿐 아니라 파키스탄 군부의 정보는 상당히 정확하고 대단히 요긴하다. 핵 테러에 대한 우려도 크다. 미국과 손 놓은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테러단체가 탈취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미국의 등골은 서늘해질 것이다.
다행히 이해관계가 부합해서일까, ‘주권 침해’ ‘적과의 내통’이란 서로 용납하기 힘든 행위를 탓하면서도 양국의 비난은 적정 수준에서 조정되고 있다. 다음 주 존 케리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의 파키스탄 방문을 시작으로 사태 수습을 위한 ‘대미지 컨트롤’ 단계로 접어들 모양이다.
파키스탄의 첫 군사독재자 아유브칸은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주인 아닌 친구”라고 붙이며 파키스탄이 원하는 양국관계를 표현했다. 미국은 주인이 아니라는 강조다.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도 부정적이다 : ‘프레너미(frenemy)’, 적인지 친구인지 모를 존재다.
서로 믿지 못하는, 언제 변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깰 수 없는 부실동맹 - 그것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바뀌지 않을 미국과 파키스탄의 현주소일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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