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배회나 방황은 신경발달장애를 겪는 자폐증 환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이다.
공원이나 샤핑몰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 부모들은 심장이 멎는 듯한 당시의 충격과 두려움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그러나 자폐아를 둔 부모에게 이 은 두려움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니라 떨쳐낼 수 없는 현실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배회나 방황은 신경발달장애를 겪는 자폐증 환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이기 때문이다.
특정 사물에 집요한 관심 발길 끌어
경관 등 찾는 사람보면 오히려 피해
자폐아들은 대부분 길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설사 깨닫는다 해도 의사소통과 사회적 관계에 심한 어려움을 느끼는 탓에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다. 경관을 비롯해 누군가 도움을 주기 위해 접근하면 아예 숨어버리거나 달아나 버리곤 한다.
정상적인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만 되어도 자신의 행선지를 부모에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터득하지만 자폐아의 배회 성향은 ‘학습효과’의 울타리를 넘어 성년기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 졸임은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평생을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거주하는 캐롤 크리스턴스는 아들 매튜가 전반적 발달장애(PDD)라는 자폐 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판정을 받은 이후 지난 20년간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자폐증은 명확한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공통적인 증상을 가진 장애들이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자폐증인 캐너 증후군(Kanner Syndrome)과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외에 이와 유사한 장애들까지 모두 합쳐 자폐 스펙트럼장애라고 부른다.
자폐아인 매튜가 처음 사라진 것은 네 살 때의 일이었다. 마을의 한 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가을축제 행사 도중 크리스턴스가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 경찰은 “확성기로 안내방송을 하면 자신의 이름을 들은 매튜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자신했지만 크리스턴스는 아들이 자신의 이름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미친 듯이 교정을 뒤지고 다녔다. 결국 매튜는 안내방송이 나간 뒤 30분이 지난 다음 학교 수위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는 이웃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매튜의 ‘실종’은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극적으로 ‘발견’됐다. 그의 가장 최근 ‘무단외출’은 몇 달 전에 일어났다.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올해 25세의 매튜는 기온이 뚝 떨어진 비 오는 날 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12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만날 요량으로 나갔다가 집에서 3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경찰에 ‘구조’됐다. 길을 잃고 건물계단에 앉아 비를 맞으며 떨다가 구사일생으로 발견된 것. 경찰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어도 저체온 현상으로 큰 탈이 날 뻔한 상황이었다.
자폐증 환자들의 배회성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전문가들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 매튜 탓에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쌓은 크리스턴스는 “사교적 관계의 개념이 없는 자폐아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자폐증 연구단체인 오티즘 스픽스(Autism Speaks)의 제럴딘 도슨은 “자폐증 환자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특정 사물에 대한 집요한 관심”이라며 이것이 이들의 빈번한
‘실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예컨대 도로 표시판에 끌린 자폐아는 낮에 보았던 표시판을 다시 보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는 것.
지난해 7월 집 부근의 연못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캔사스주의 다섯 살짜리 자폐아 메이슨 메드램의 사례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메이슨은 평소 물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인 세일라 메드램은 일단 무엇인가에 마음이 쏠리면 시간에 관계없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집안의 모든 출입문에 다중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잠도 그의 옆에서 잤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그를 보호할 수가 없었다. 유난히 무덥던 지난 7월 어느 날 밤 메이슨은 엄마가 잠든 사이에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창문을 열어둔 것이 화근이었다. 그의 시신은 다음날 아침 집 부근 연못에서 발견됐다.
자폐증의 다른 모든 증상과 마찬가지로 배회의 정도 역시 개인차가 있다. 매튜의 경우처럼 가끔씩 돌발적으로 사라지는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어떤 환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집밖으로 뛰쳐나간다. 전자의 경우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처하기가 어렵고 후자의 경우엔 단 한 순간도 환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의 입장에선 하루하루가 힘겨운 전투다.
실종빈도가 잦은 경우 보호자는 자폐아의 침실에 자물쇠를 설치해 실종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거나 위치추적 장치(GPS)를 이용해 눈에서 놓친 아이의 행적을 파악한다. 하지만 온전치 못한 아이를 집안에 ‘감금’하는데 대해 주변에서 이따금씩 쑥덕공론이 나도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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