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소재 한 단체의 조용한 조직혁신이 미주한인사회에 상쾌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변화의 진원지는 한미장학재단 동부지회. 1969년 설립된 재단의 6개 지부중 하나로 매년 50-60명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유서 깊은 단체다.
올 1월 김용회 회장(미국명 레오나드 김, 사진)이 취임하면서 대대적인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혁신의 목표를 조직의 비효율성 제거와 투명화, 소통 확대로 잡았다.
“재단이 세워진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한인단체들도 그렇지만 사회는 급변하는데 구태의연한 조직운영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어렵겠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우리가 직접 돈을 벌어 장학금을 주는 게 아니라 이 사회로부터 모아서 쓰는 단체이기에 좀더 아끼고 조심스레 쓰는 등 효율과 투명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먼저 상근직원도 없는 사무실부터 없앴다. 그 대신 미국사회에서 신 추세인 버츄얼 오피스(virtual office) 개념을 도입했다. 전화기와 놀고먹는 컴퓨터가 사라졌다. 분산된 자료를 인터넷에 집적하고 열람케 해놓았다. 장학생 신청방식에서도 종이를 없애고 온라인화 했다. 시간도 절약됐고 신청도 간편해지면서 장학생 신청이 대폭 늘었다.
사무실 렌트비 연 5천 달러에 우표와 편지봉투 등 불필요한 경비지출이 줄면서 연 1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그 대신 10명의 학생에 장학금을 더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투명 운영계획도 세웠다. 재단 회칙에는 장학금 기부자가 수혜학생을 지정하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규를 잘 모르는 이들이 간혹 이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김 회장은 선언했다. “모금을 못한 회장으로 남더라도 깨끗한 시스템을 만들겠다.” 그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다. “회장이 되면 아무래도 모금실적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저는 투명한 운영을 하면 기부가 더 잘 들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운 좋게 장학기금 운용도 원활해졌다. 그동안 장학기금의 상당수는 투자전문회사에 맡겨 운용돼왔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증권시장이 악화되면서 기금 손실 폭이 컸다.
김 회장은 “이젠 기금이 종전의 최고치 수준으로 회복됐다”며 “기금운용을 안전에 치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미장학재단 동부지회의 시스템 개혁이 성공하면서 전체 재단 회의에서 그 사례가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미주지역의 다른 지회들도 그 노하우를 전수해갔다. 일부 한인단체들에서도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인단체들 대부분이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자세로 일해 왔습니다. 인력이나 예산 등 어려운 여건임을 이해하지만 이젠 관성에서 탈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60년, 70년대에 본격화된 한인 이민사회의 연륜이 성숙해지는 만큼 단체운영도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용회 회장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힘의 원천은 그의 경력과도 무관치 않다. 김웅수 전 가톨릭대 교수(전 6군단장)의 둘째 아들로 1967년 초등학교를 마치고 도미한 1.5세인 그는 현재 ‘The National Academies’의 CEO급으로 있다. 워싱턴 사무실의 직원만 1천200명에 전국의 과학기술자, 의학자 등 준회원만 1만 명이나 되는 매머드 비영리단체를 이끄는 경륜이 한미장학재단 혁신의 바탕이 된 것이다.
또 1992년부터 재단에 참여해 총무, 부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아 봉사한 경험도 뒷받침이 됐다. 그는 워싱턴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의 단장인 이경신 박사의 내조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 장학금 수혜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저소득층 고교생들을 위한 과외 지도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또 은퇴한 1세들을 재단 운영에 참여시켜 그들의 전문지식과 열정,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김 회장은 “한미장학재단이 올해로 42년 역사의 미주 대표적인 단체이지만 그 역사성에 못지않게 운영 방식도 대표될 수 있게끔 노력할 것”이라며 “새로운 시스템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장학단체들과도 공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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