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이름은 ‘The Elders’다. 전직 국가수반에, 전 유엔사무총장,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회원 혹은 명예회원이다. 평화정착과 인권증진, 빈곤해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결성된 말 그대로 지구촌 원로들의 그룹이 ‘The Elders’다.
이 그룹의 일부 회원들이 평양을 방문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대통령, 그로 브룬트란트 전 노르웨이총리, 그리고 메어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대통령 등이 그 면면이다.
그들은 귀로에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내용이 그런데 그렇다. 김정일 정권의 대변인 역할만 한 것이다. 북한의 인권참상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북한이 맞은 식량난이 마치 한국에 책임이 있는 양 편향된 발언으로 일관했다.
극히 실망스럽다. 동시에 인간의 우매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새삼 실감케 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다. 국제사회에서 원로로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런 그들이 저 정도의 모습을 보이다니. 혹시 김정일 체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인간의 우매성을 절감한다. 이는 매번 선거 때면 느끼는 감회이기도 하다.
압승을 거둔다. 그 정당은 그러나 얼마 못가 자멸의 길을 걷는다. 권력에 취한다. 오만이 눈을 가린다. 밑바닥 유권자 정서와 점차 멀어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국민의 심판대 앞에 선다. 결과는 참패다. 유권자가 등을 돌린 것을 그 때야 실감한다.
6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2년이 못 갔다. 기록적인 대패를 맞보게 된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민주당이 2008년 대선 후 보여 온 정치적 궤적이다. 300석의 거대 집권당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한 일본 자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한국의 4.27 재보선 결과도 크게 보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일신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다’ ‘집권의 전리품 나누어 먹기에 급급하다’ ‘개혁과 변화에 둔감하다’- 그동안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쏟아진 불만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거기다가 총선도 아닌 재보선 선거다. 패배는 그러므로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야권의 승리나 여당의 패배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기까지만 머문다면 그런대로 ‘오케이’다.
상황은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단순한 ‘한나라당 피로감’에 기대기보다는 좌파가 총집결한 야권의 대통합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여서다.
“종북세력으로 분류되는 극좌에서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좌파 세력은 한나라 당 분진합격(分進合擊)에 나서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의 진단이다. 야권 대통합을 통해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로 싸운 선거전에서 좌파가 대부분 승리를 거둔데 주목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당 대 당의 지지도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한나라당 지지는 40%선이다. 민주당 지지는 15% 정도다. 그 분당 을구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한나라 당 지지율이 40%라는 것은 반대로 60%가 한나라당에 부정적이란 이야기다. 야권대통합을 통해 새로운 정치 드라마를 써냈다. 그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다. 그 여세에다가 만연한 한나라당 피로감에 편승해 51% 득표율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요 선거전 마다 좌파는 ‘51% 대 49%’란 득표율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사실에 주시하면서 내년 4월과 12월로 예정된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적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관련해 주목되는 게 북(北)의 동향이다. “김정일은 나름대로 달력을 들추며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년 11월에는 미국대선. 12월에는 한국대선이 치러진다. 미국 대선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오바마가 재선되어도 그렇고, 공화당이 승리하는 날에는 낭패감만 더해갈 것이다.” 한 국내 관측통의 지적이다.
문제는 한국 대선이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마당에 또 다시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야 희망이 있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기해 완성해야 할 강성대국 대과제, 3대 후계체제 공식출범, 이 모든 것과 맞물려 있는 것이 한국 대선 결과다.
김정일 체제는 ‘햇볕 10년’ 동안 남한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종북 세력을 최대한 동원해 반 보수 좌파연합이 이루어질 경우 승산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친북 좌파정권 출범을 돕기 위해 대남 공작역량을 총집중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평화공세와 남남갈등 극대화, 이를 통한 국론결집 방해가 우선 예상되는 2012년 선거정국의 해 대남공작 시나리오다.
여기서 카터 일행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왜 북한당국은 그들을 불러들였나.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강성대국완성의 해에 대비한 식량 확보를 위해서다. 아시아 위크지의 분석이다. 거기에 하나 더 있는 게 아닐까. 2012년을 겨냥한 대남공작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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