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제외하곤 잠잠하던 공화당 2012년 대선 후보군이 이번 주 들어 술렁이기 시작했다. 비중 있는 예비후보 중 하나로 꼽혀오던 헤일리 바버가 25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다. 헤일리의 깜짝 퇴장에 따른 나머지 후보들의 손익계산에서부터 공화당 스타들이 출마를 꺼리는 이유까지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나오면서 아연 활기 띤 긴장감마저 감돈다.
현재의 공화당 대선 후보군은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진지한 그룹과 흥행성 그룹이다.
공화당 주류 기성세력의 인정을 받는 진지한 그룹 후보들은 대부분 전·현직 주지사다. 명목상 선두주자 미트 롬니 전 매서추세츠 주지사, 티파티 진영에도 발을 담고 있는 50세 뉴페이스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주중대사직에서 막 사임하려는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워싱턴 공화지도부가 가장 좋아하지만 본인은 아직 망설이고 있는 미치 대니얼스 현 인디애나 주지사…나흘 전 퇴장한 바버도 유능한 현 미시시피 주지사로 이 그룹에 속했었다.
정석대로 선거조직을 구성하고 중요한 이슈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은 무소속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어 본선에서 ‘선출 가능한’ 공화당의 주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론 공화당 내에서도 대중적 인기는커녕 롬니를 빼고는 이름조차 생소한 처지다.
반면 또 한 그룹은 소개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나름 유명 인사들이다. 독설과 허풍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자질시비가 끊이지 않는 전 알래스카 주지사이자 부통령후보였던 새라 페일린, 연이은 불륜과 열정적 아이디어 맨의 양면을 지닌 전 연방하원의장 뉴트 깅리치, 티파티의 총아 미셸 바크먼 연방하원의원, 그리고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14선 연방하원으로 극단적 자유주의자 론 폴과 인기는 가장 높지만 워싱턴 지도부에서 환영 못 받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도 굳이 나누자면 이 그룹에 속할 것이다.
흥행성 그룹 후보들의 본선 경쟁력은 상당히 낮다. ‘페일린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허커비를 제외하곤 이들 중 하나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전망조차 나온 적 없다. 밋밋한 공화 경선장에 미디어의 조명을 끌어오고 인터넷에 시끌시끌 논쟁을 부르는 흥행성 기여도는 인정치 않을 수는 없지만 트럼프의 경우 도가 지나쳐 공화당을 희화화 시키는 위험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이들 중 공식적으로 출마선언을 한 후보는 아직 없다. 출마가 확실한 롬니와 폴렌티도 공식적으론 ‘준비위 구성’ 정도에 머물러 있다. 허커비, 페일린, 트럼프 모두 현재론 출마여부도 확실치 않다. 그러니 공화진영은 확실한 선두주자만 없는 게 아니다. 아직 출발 준비도 안된 상태다.
‘민주당의 주자’ 오바마는 이미 달리기 시작했다. 또 2012년 대선의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까지는 불과 8개월이 남았을 뿐이다. 준비가 됐든 안됐든 이젠 공화당도 캠페인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주엔 첫 경선지 3개주 중 하나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첫 공화후보 TV공개토론이 잡혀 있다. 폭스TV 주관인데 참가자가 ‘충분할까’ 우려돼 아직은 예정이다.
공화당 전략가들은 2012년 대선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지적하며 “공화당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길 수 있는 선거”라고 강조해왔다. 근거가 있다. 경제에 대한 우려와 불만이 증가하면서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응답이 리버럴 신문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서 70%로 집계되었다. 과거 이 수치가 64%가 넘었을 경우 현직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었다.
정치·경제 환경이 내 편인데 정작 자신은 준비가 안된 게 현재 공화당의 고민이다. 백악관 탈환의 준비완료를 알리며 앞장 설 후보군조차 아직은 영 신통치 않은 것이다. 공화당 유권자들의 관심도 시들하다. 상당수 후보들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좋은지 싫은지 모르겠다는 공화 유권자가 90%에 달하고 열렬히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응답도 57%나 된다.
공화당엔 인물이 없나? 그건 아니다. 괜찮은 후보감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현직에 대한 도전이라는 부담도 크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화당의 정체성 위기라고 브래들리 블레이크먼 조지타운대 교수는 지적한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새로운 국정방향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오바마 출생의혹 같은 가십성 루머나 이슈로 삼고, 당내의 침묵하는 다수보다는 시끄러운 티파티에 휘둘리며 우왕좌왕하는 게 공화당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늦지는 않았다. 흥행성 후보들의 사이드쇼에 정지 사인을 보내야 할 때다. 그래야 진지한 후보들이 망설임 없이 너도나도 뛰어들 것이다. 극우보수의 서커스같은 경선을 지양하고 경선에서의 승리가 본선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전국적 리더십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진지하면서도 익사이팅한 후보, 공화당이 기다리는 ‘제2의 레이건’은 그래야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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