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1일 일본 열도를 강타한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와 원전사고는 엄청난 재앙에 무기력한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지진대에 살고 있는 남가주 한인들은 지진뉴스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본과 같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살고 있으며 이번 지진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는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가주 한인들도 오래 전 대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다. 1994년 1월17일 새벽 4시31분 샌퍼난도 밸리를 강타한 진도 6.7도의 노스리지 지진은 마침 공휴일이었던 마틴 루터 킹 탄생일 새벽에 곤히 잠들어 있던 한인들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앙지 한복판인 노스리지 메도우 아파트에 거주하던 한인 이필순씨, 하워드 이 부자가 숨졌으며 LA 다운타운 고층 아파트에 혼자 살던 88세의 나기봉 할머니가 지진 충격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밸리에 거주하던 한인의 50%에 가까운 2,175가구가 재산피해를 입었으며 노스리지, 그라나다힐스에서만 1,330 한인가구가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이필순씨의 부인 이현숙씨가 폐허현장에서 오열하는 모습은 타임지 커버에도 소개되어 노스리지 지진 피해자들의 참상을 상징하는 심벌이 되기도 했다. 기자도 당시에 노스리지 지진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장남을 졸지에 잃고 막내아들 제이슨과 홀로 남은 이현숙씨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지진피해로 한인 가정이 무참하게 붕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당시 밸리의 지진피해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참혹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또한 그라나다힐스에 거주하는 한인 피해자 김정선씨 부부를 취재하면서 집이 두 동강나고 지붕이 무너져 겨울비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 노스리지 지진으로 곳곳의 프리웨이와 건물이 붕괴하면서 72명이 숨졌고 부상자가 9,000명에 달했으며 재산피해 액수만도 200억달러에 달하는 미 역사상 최대의 지진피해로 기록됐다.
반면 일본의 경우 규모 9.0강진과 대규모 쓰나미가 동일본 지역을 강타해 사망, 실종자 수가 수만명에 이르는 등 정확한 피해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특히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이어지면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공포까지 겹쳐 세계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트리플 재난(지진·쓰나미·원전사고)을 경험했다.
일본이 최악의 상황에서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에 국민들의 몸에 밴 지진대비 훈련과 질서의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에 일본에서 발생한 강도와 유사한 지진이 남가주에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노스리지 지진이 발생한 지도 벌써 17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한인들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지진을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는 것은 지진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위험한 생각이다.
지진은 다른 재난과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평소에 지진에 대비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유사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비상계획을 짜놓을 필요가 있다.
적십자사는 대지진에 대비해 병물과 비상식량, 간편한 의류 및 야간용 방한복, 현금, 손전등, 라디오, 구급약품, 호루라기, 침대 밑에 신발 등을 미리 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평소에 비상용품들을 준비하고 훈련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가 지진발생 때 우리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
가주는 지진만 없다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다. 습도가 낮아 여름에도 불쾌지수가 낮고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때가 없다. 그러나 숙명적으로 지진대에 포함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가주에서 규모 7.8도 이상의 초대형 지진이 30년 내 발생할 가능성은 50%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지진이 발생할 경우 1,800여명 사망, 5만여명 부상, 2,000억달러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질학자들이 강조하는 가주 지진발생은 ‘가정’이 아니라 ‘시기’의 문제이다.
재난발생시 정부가 피해자들을 돌봐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스스로 지진에 대비해야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우선 도로가 끊어질 것이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러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일본 지진을 계기로 개인은 물론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지진대비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 때다.
박흥률 / 부국장겸 기획취재 부장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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