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탄신 466 주년 기념 논고(2)
먼저 칼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인식과 개념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우리 민족에게 칼은 호신용이거나 장수의 지휘 또는 의전용이었을 뿐 전투의 주력 무기는 아니었다.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동쪽에 사는 큰 활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부르는 성어(成語)의 내력이나, 활 당기며 말 달리는 고구려 고분 벽화가 말해 주듯이 우리 민족은 활의 민족이고 따라서 우리의 전통 전투무기는 어디까지나 활이었다.
이는 조선을 세운 신궁(神弓) 이성계나 충무공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칼을 무기로 쓰셨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활은 위엄의 상징으로는 미흡하기 때문에 칼을 대신 등장시켰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둘째, 우리 말로 칼은 단일한 표현이나 무기로서의 도검(刀劍)은 그 구조와 용도 면에서 확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도는 한날(▼)의 등이 굽은 베는 칼이며, 검은 양날(◆)의 직선형 찌르는 칼이다. 이 기준으로는 현충사 큰 칼은 대도라고 기술해야 옳으나 관행상 장검이라는 표현이 일반화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충무공께서는 무슨 연유로 실용성도 없는 무지막지하게 큰 칼을 두 자루씩이나 만들어 지니시게 되셨을까.
현충사 대도는 두 자루 한 쌍으로 보물 32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순신 기록 유산 다음 가는 귀중한 유형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이가 큰 키를 훨씬 넘는 197.5cm이며 한 자루의 무게만 해도 5.3kg, 손잡이를 빼도 4.3kg이나 된다. 이 대도는 너무 커서 허리에 찰 수 없기 때문에 칼집에 약 30cm 간격으로 매어진 멜끈이 암시하듯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의전용 또는 정신수양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칼날에는 공께서 지으신 검명(劍銘)이 각각 새겨져 있어 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2연 절구를 이루어 공의 호쾌한 기상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자 장검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 대도의 길이는 삼척 장검의 2.2배인 6.6척이나 된다. 손잡이를 뽑아내면 갑오년사월일(甲午年四月日)이라는 제작시기와 태귀련(太貴連) 이무생(李茂生) 이라는 칼을 만든 두 도검장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임란발발 2년 후인 1594년 한산도에서 제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서 꼭 지적하고 싶은 점은, 417년 전이라 하면 칼 만드는 대장장이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대인데 자기의 명검에 그들의 천한 이름을 새겨 넣게 하여 그 이름이 천세에 빛나게 한 마음 쓰심에서 시대를 앞서가신 공의 진정한 민권의식을 경탄하게 된다.
이순신 대도에서 일본도 특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 손잡이다.
조선의 환도는 한 손으로 잡고 휘둘러 치기 때문에 길 필요가 없으나 일본도는 검도에서 보듯이 두 손으로 마주 잡고 힘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손잡이 부분이 595mm, 두자 정도나 길고 칼자루에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 천이나 가죽끈으로 감게 마련인데 조선의 방식이 돌려감기식인 반면 현충사 대도는 대표적인 일본도 특성인 X자 매듭감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음, 칼날과 손잡이 사이에 막아 끼는 코등이라는 판고리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꾸(국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쪽 칼날에는 칼 쪽으로 길다란 피흘림 골이 파져 있어 살상용 일본도의 구조를 하고 있는 점이다.
필자로서는 전체적인 조형미에서도 날렵한 일본도의 특성을 읽는다. 이렇게 된 데는 이 칼을 만든 태귀련과 이무생 두 도검장의 기구한 인생역정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에 남해안을 노략질하던 왜구들에게 잡혀가 일본도의 명산지로 알려진 ‘비젠’이라는 곳의 대장간에서 풀무질과 망치질을 하면서 도검장의 기능을 습득하고 요행으로 귀환한 전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난중일기에는 노획한 일본도를 수하 장수에게 선물로 건네주었다는 기록과 항복한 왜군들에게서 수거한 일본도 너댓자루를 수루의 천정에 감추어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도는 조선군 사이에 갖고 싶은 인기 수집품목이었던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태귀련과 이무생은 필생의 정성으로 명검 하나씩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제의했을 법하고 생각이 탁 트인 충무공께서는 “이왕에 만들려거든 왜놈들보다 갑절이나 큰 것을 만들어 다오” 당부하시고는 “내 너희보다 갑절 큰 너희 칼로 너희를 사그리 베어 없애리라” 다짐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해 본다.
환도의 개념이 몽고로부터 한중일 삼국에 전파된 후, 역사와 발전과정을 거치며 상호 교류 속에 지역 특성이 가미되었으므로 절대적 구분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현충사 대도에 일본도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순신 검명과 도검장 이름, 제작시기 새김, 짝이 없는 초대형 크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무공의 정신과 의지가 담겨 있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명품으로 오직 ‘이순신 대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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