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회가 부활절 휴회에 접어든 이번 주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길로 나섰다. 지난 몇 주 계속된 워싱턴의 지루한 싸움을 일단 접고 동부 버지니아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로 횡단하며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는 대국민 홍보 ‘로드쇼’의 개막이자 2012년 대선을 겨냥한 본격적 유세의 출발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진지하게 호소하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오바마의 타운홀 미팅 순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주요 이슈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는 길로 나섰다. 경기부양안 통과를 위해서도, 헬스케어 개혁 성사를 위해서도 그는 전국 곳곳에서 타운홀 미팅을 통해 정부의 도움이 시급한 보통사람들의 절박한 현실을 생생히 전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번 길의 주제는 적자감축안이다. 하원 공화당안과 오바마안이 지난 두주 사이 차례로 발표되었지만 양측이 동의한 내용은 국가 신용을 위협할 정도로 불어난 연방정부의 빚을 줄이려면 지출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원칙 정도다. 공화당은 메디케어 민영화 등 의료개혁과 부유층 감세가 포함된 세제개혁을 들고 나왔고 오바마는 지출삭감과 함께 수입증가를 위해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제안했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줄이느냐의 방법론을 넘어 양당의 기본 통치철학이 부딪치는 정면대결이다.
로드쇼 첫날, 오바마는 버지니아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자신이 제안한 ‘희생 분담을 통한 번영 공유’를 다짐하며 젊은 유권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 “난 노인들에게 수천달러의 의료비를 더 부담하게 하고 가난한 어린이의 조기교육 지원을 없애면서 부유층의 세금감면을 할 수는 없습니다…커뮤니티 칼리지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백만장자에게도 희생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틀전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의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적자감축 플랜 지지도에선 오바마가 우세하다. 오바마의 부유층 세금인상안엔 72%가 지지하고 공화당의 메디케어 민영화엔 65%가 반대한다.
이번 순회를 통해 오바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등 돌린 무소속 유권자들의 마음도 되찾아야 하고 그동안 실망과 불만으로 시들해진 리버럴 진영도 달래야 한다. 무소속을 잡으려면 실용중도의 리더십을 발휘해 적자해소를 우선시해야 하고 리버럴을 달래려면 공화당의 극우보수와 강력하게 맞서는 투사가 되어야 하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오바마팀은 2008년 민주당 표밭을 뜨겁게 흔들었던 열정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당시의 ‘오바마의 매직’이 재연되어야 할텐데, 그럴 수 있을까?
선거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머리를 흔든다. 이어서 그럴 필요도 없다고 덧붙인다. 표밭의 열정이란 새 인물에 설레는 기대에서 생기는 것이고 오바마는 더 이상 변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뉴페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가진 것 다 보여준 워싱턴 정치인 중 한사람으로 전락한(?) 오바바에겐 대신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현직이라는 유리한 입지다.
1932년 이후 현직 대통령중 3명만이 낙선했다. 포드와 카터와 아버지 부시, 3명 모두 당 예선에서 버거운 도전자에 진을 뺐었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는 여유가 있다. 민주당내 도전자도 없을 듯하고, 선거자금도 넉넉하다.
현직의 재선을 막는 요소 중 하나는 상대당의 뛰어난 후보인데 아직 공화당 후보진영은 지리멸렬 상태다. 가장 진지한 후보로 꼽히는 미트 롬니는 몰몬교라는 약점 때문에 예선통과도 불투명하고 요즘 뉴스의 각광받는 도널드 트럼프 해프닝은 공화당 자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오바마의 재선 전망이 밝다는 이야긴 아니다. 첫 본격 유세에 나선 이번주 정치환경부터 전혀 산뜻하지 못하다. 연달아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어둡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 나타난 오바마의 국정지지도는 1월에 비해 7포인트나 하락한 47%로 내려앉았다. 그보다 더 두려운 조짐은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나빠지고 있다”가 44%로 “좋아지고 있다”는 28%보다 훨씬 높다.
앞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지만 이번에도 관건은 ‘역시 경제’일 것이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 깎이거나 정체된 임금, 거기에 치솟는 개스값의 3대 악재가 계속되는 한 공화 후보가 누가되든 오바마의 재선은 장담하기 힘들다.
양당의 적자감축안은 ‘위급 사안’이라는 지적이 무색하게 적자를 줄이는 정책으로 신속히 입법화되기보다 2012년 대선의 주요쟁점으로 치열하게 부딪칠 확률이 높다.
오늘 LA에 오는 오바마는 유권자들에게 물을 것이다 : “당신은 부유층 세금 깎아주려고 메디케어를 없애기 원합니까? 아니면 메디케어 구하기 위해 부유층 세금인상 원합니까?”
공화 후보도 물을 것이다, 레이건처럼 : “당신의 형편은 4년 전보다 나아졌습니까?”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아직 우리에겐 18개월의 고심할 시간이 남아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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