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은 필자에게 뜻 깊은 날이었다. 어머니의 생신이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참 젊으시다. 이제 올해로 75세 밖에 안 되셨다. 그러니까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에 결혼하신지 55년이 되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영어도 못하시고 다른 직업 기술이 없어 호텔, 학교, 가정집 청소 등을 동시에 두세 군데에서 하시면서 세 자녀들의 교육을 뒷바라지 하셨다.
지난 몇 년간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셨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집밖에도 많이 못나가셨다. 약도 많이 드셨고 병원 출입도 잦은 편이었다. 필자의 집에서 약 5분정도 거리에 사시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는 건강하신 아버지께서 쭉 해오셨다.
금요일의 어머니 생신모임은 저녁에 하는 게 원칙이었으나 필자가 도저히 저녁에 시간을 낼 수가 없을 것 같아 점심으로 하기로 했다. 바깥출입이 불편하시기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전복죽과 생선회를 준비해 어머니 집으로 가기로 약속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의 큰 아들 녀석도 할머니 집으로 오기로 했다.
그런데 그 주 월요일에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 날 필자가 출장 중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모시고 의사한테 가셨다가 바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MRI 결과로는 뇌의 여러 곳에 뇌출혈 증세가 보였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그 몇 일 전에 댁에서 쓰러지셨던 모양이다. 식사를 더 이상 제대로 하실 수 없기에 전복죽과 생선회는 포기하고 간단한 케익을 하나 준비했다.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 앞에 촛불을 꽂은 케익을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리자 뇌출혈로 인해 뇌가 이미 많이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같이 노래를 따라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내는 생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바로 병원으로 가서 담당의사로부터 어머니의 뇌출혈 상황과 심장의 상태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그때 담당의사가 물어보기를 만약에 심장이 멈춘다면 심폐소생 시도를 원하느냐고 했다. 물론 “당연합니다”라고 바로 대답을 하자 의사는 어머님의 현재 신체상황으로 봐서는 심폐소생 시도 중에 상체의 앞면에 있는 뼈들이 모두 부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사항은 아니니 가족들과 잘 상의를 해보고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뜻밖의 권유였다.
필자가 거의 30년간 변호사 업무를 보아오면서 죽음을 대비하는 많은 고객들을 위해 준비하는 서류들 중에 Living Will이란 것이 있다. 이 서류는 만약에 기계에 의존해서 생명을 연장해야만 하는 상황에 들어갔을 때 계속 그러한 방법으로 생명유지를 원하는지에 대한 의사를 밝히는 서류다. 소생 가능성 없이 기계에 의해서 단순히 생명만 연장이 되는 상황은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줄 수도 있기에 미리 잘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라고 필자는 권고해왔다. 그리고 필자의 이러한 권고를 받는 고객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 기계로 인해 인위적인 생명연장을 원치 않는다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리고 필자는 그러한 결정이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류를 준비해 드리곤 했다. 사실 필자에게는 이러한 서류 준비가 고객이나 그의 가족들이 겪는 감정의 헤아림 없이 때로는 기계적으로 이루어져 왔었다. 물론, 본인이 아닌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고객의 그러한 감정을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 자신이 어머니의 일로 그러한 질문을 의사로부터 받자 참 어렵고 마음 아픈 결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주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어른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가까운 친구들이 겪는 것을 볼 때 위로의 뜻을 표하면서도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같은 아픔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필자 자신이 어쩌면 얼마 안가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작별을 할 수도 있다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그동안 주위에서 같은 입장에 계셨던 분들에게 드렸던 위로인사의 부족함이 몹시 죄송스러워진다.
세 자식들을 장성하게 키우시는 동안 정말 모든 것을 희생하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몹시 힘들다. 바라건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나마 조금이라도 더 웃으실 수 있는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가능한 한 큰 고통없이 계시다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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