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업과 리더십을 한꺼번에 - 디베이트 세상
한인사회는 아직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디베이트를 하지 않아 생기는 몇 가지 장면을 생각해 봤다.
▲장면 1: 한국의 한 TV 토론이다.
고명한 분들이 참석했다. 발표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질문자에게 질문하라고 마이크를 넘겼다. 그런데 이 질문자, 자기 생각을 먼저 길게 늘어놓는다. 한참 자기 이야기를 하더니, 끝에 이렇게 질문한다.
“자, 이런 제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타까운 일이다. 질문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 자주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디베이트를 안해서 생기는 문제다. 디베이트를 배우면, 질문, 반박, 답변, 재반박 등의 형식에 익숙해지게 된다. 이렇게 귀한 TV 토론에 나와 갈팔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면 2: 한국에서 갓 온 진우가 힘겹게 공부해서 명문대에 입학했다. 수업시간이다.
교수님이 진우를 지목하고, 오늘 수업시간의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진우는 ‘드디어 내 실력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해서, 어제 밤 예습한 과제물의 요점을 말한다. 그리고는 칭찬받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묻는다. 진우는 교수님이 제대로 이해를 못했나 싶어서 다시 말한다. 그런데 교수님은 또 묻는다. “텍스트 말고, 자네 생각 말이야. 자네 생각!” 진우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과제물에 내 생각이란 것은 없던데…”
이상은 한국에서 바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 온 한국 유학생들이 겪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 중의 하나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은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란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수업 시간의 참여도가 낮고, 자기주장이 없는 학생”이란 평가도 받는다.
우리 자녀가 비싼 돈 들여 이런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디베이트를 배우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 논리를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면 3: 다시 한국의 TV 토론이다.
진행자가 5분만 발언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이 정치가는 흥분된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 한다. 진행자가 중간에 막아보려고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토론회를 이렇게 망치게 하고 나서는 방송국을 나서며 보좌관에게 말한다. “나, 오늘 잘 했어?” “그럼요,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는데요.”
디베이트에서 이렇게 하면 감점이다. 디베이트 경시대회에서는 심판이 초시계까지 갖고 들어간다. 허용된 시간을 어기면 감점이다. 대화에서 상대방이 한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디베이트에서는 이런 훈련을 늘 하게 된다. 잘 들어야 잘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발언할 때 다른 상대방은 열심히 메모한다. 듣는 자세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미국의 수능시험이라 할 수 있는 SAT에는 2005년 작문(writing) 시험이 추가되었다. 새로 추가된 작문 시험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부분은 다지선다형으로 전체 작문 점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는 한인 학생들에게 익숙한 문제 유형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두 번째 부분이다.
이는 에세이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25분 동안 직접 글을 써야 한다. 한인 학생들이 약한 부분이 여기다. 그래서 전체 점수에서는 30%밖에 차지하지 않는 에세이가 작문 시험 성적을 좌우한다. 많은 한인 학생들이 이 대목에서 시험지만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에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디베이트를 열심히 하면, 이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실제 디베이트 과정에서는 찬반의 한 입장을 골라 그에 걸 맞는 근거를 대며 자기주장을 펴는 훈련을 한다. 이를 글로 풀어 쓰면 그것이 바로 SAT의 작문(Writing)의 에세이 연습이다. 이를 매주하게 되면 실제 시험장에서는 전혀 당황하기 않고 자기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케빈 리(글로벌 에듀뉴스·
투게더 디베이트클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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