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항상 옆자리를, 대학을 다닐 때는 전공이 달라 매일 만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연락을 하고 지낸 아주 친한 친구였다.
가랑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만 보아도 웃어 죽겠다던 중고등학교시절. 한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궁금하고 허전해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 때, 희망도 야망도 비슷했고 같은 길을 걷는 듯 했든 그 시절. 서로가 너 아니면 못 견딜 것 같고 너 아니면 사는 의미조차 없을 것 같았든 그 시절.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달라져 대학을 가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그 친구는 음악을 전공하기로 하고 나는 약학공부를 하기로 했으니 지난 6년 동안 뜻이 같고 생각이 같은 줄 알았던 우리는 서로가 달랐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전화를 잡으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엄마나 오빠가 나도 전화 좀 쓰자고 몇 번을 말할 때까지 붙잡고 재잘대곤 했다.
그러던 그 친구가 대학을 나와 결혼을 했고 내가 결혼을 할 때쯤 되니 그 친구의 뱃속에는 큰 베개를 넣고 다니는 듯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결혼식 때 피아노는 자신이 꼭 친다는 것이 아닌가! 그 큰 배를 안고 피아노 앞에 앉아 웨딩마치를 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고마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혼 후 그 친구도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느라 나도 딸, 아들을 낳아 기르느라 서로 바쁘다보니 조금은 연락이 뜸해지더니 우리가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니 더욱 더 멀어져만 갔다. 고작 일 년에, 가끔은 몇 년에 한번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한테서 남편과 아들을 동행으로 미국을 여행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첫 기착지가 이곳 워싱턴이고 기간은 일주일 정도라니 정말로 반가운 마음 이루 금할 길 없었다. 다행이도 우리집에 방 2개 정도는 여유가 있었으니 더욱 안심되었다. 삼십여 년 만에 친구가 찾아온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마음은 어느덧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되돌아가 몇 일 동안 무슨 일이든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논어’ 첫 마디에 나오는 말이 생각났다.
“친구가 먼데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여기에는 필자가 생각하는 간단한 뜻만이 아닌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평소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에 이 말이 생각났다. 친구 중에 친구요, 동무 중에 동무요, 우정 중에서도 으뜸의 우정이 찾아온다는데 어찌 아니 기쁘겠는가?
우정!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말인가. 하루 이틀에 느끼지 못하는 감정. 내 마음을 다하고 내가 헌신하지 않으면 느껴보지 못하는 우정.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봄에 내리는 이슬비 같은 느낌. 그렇게 다가와 오래오래 머물러 주는 생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감정. 일생을 두고 잊히지 않는 마음의 향기이기도 한 이 우정이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도 마음이 설레이는 지 몰랐다. 서로 변치 말자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마음은 한여름 지나가는 폭풍과 소나기 같은 연정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든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며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참으로 반가운 친구였기에 피곤해 하는 줄도 모르고 밤새워 얘기꽃을 피우며 옛날같이 깔깔대며 하루를 지냈다. 다음 날부터는 조금씩 달라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은 말이 조심이 되고 이런 말은 해서는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생각만 하고 지껄인 어제가 후회까지 들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 방법을 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노라니 옛날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 생각이 나서 사진첩을 꺼내어 한장 한장을 넘기다 보니 정말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옛날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지금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내 얼굴에는 셀 수조차 없는 주름살이 보였고 피부색깔도 많이 달라졌다. 이런 것들이 내 생각 친구의 생각을 달리해 말 한마디, 한마디 생각해서 하게 하는구나 하니 우정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너와 나요, 우리네 인생살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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