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는 District of Columbia라는 공식 명칭이 시사하듯이 미국에서 둘도 없는 특별시다. 예를 들자면 District of Columbia의 제1심 법원인 Superior Court의 소환장은 미국 대통령 이름으로 발부된다. 또 버젓이 시민들이 선거하는 시의회와 시장이 있건만 시의회가 통과시키고 시장이 추인하는 시예산은 연방의회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옥상옥(屋上屋)의 형국이다. DC의 주민들은 대통령 선거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은 뽑을 수 없고 단지 하원의 토의에는 참석할 수 있으나 투표권은 없는 대의원(Delegate) 하나만 달랑 뽑을 수 있으니까 어느 의미에서는 세금은 다 내면서도 2등 시민 취급을 받기 때문에 DC 자동차 면허판에는 ‘투표권이 없는 조세’란 항의 문구가 쓰여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출신 베이너 의장의 연방 예산에 대한 이견 조정을 위한 타결에서도 DC의 자치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이 DC 정부 요인들의 주장이다. 즉 Planned Parenthood라는 산아제한기구가 낙태의 실천을 권장하기 때문에 그 기구에 연방예산이 배정되는 것을 반대하는 공화당이 그 입장을 철회하는 동시에 오바마는 DC 정부가 연방기금이 아닌 자체 기금으로 극빈자의 낙태를 보조하는 것을 금하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빈센트 그레이 시장과 일단의 시의원들이 상원의원 건물 부근에서 데모를 하다가 체포된 사건의 배경이다. 그러나 금년 1월에 취임한 그레이 시장이 체포되고 포박되어 지문과 사진이 찍히는 등의 범죄피의자 구인 절차를 스스로 감수한 데는 DC의 불완전한 자치권에 대한 항의와 더불어 그 자신에게 들어 닥치는 듯한 정치적 먹구름을 희석시켜 보려는 심산이 한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취임한지 두 달이 갓 넘어서부터 그레이 시장과 그의 핵심 측근은 대형 폭로 기사로 시달려 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레이의 고위급 보좌진들의 자식들 여러 명이 DC 정부에 취직되었다는 사실이 주간지에 폭로되었다. 또 DC 재정도 어려운 지경인데 시장의 측근들이 법 한도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도 보도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작년도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시의 애드리안 휀티 시장을 맹공격하던 술래이몬 브라운이라는 후보자가 별로 자격도 없는데 11만달러 연봉으로 의료재정국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다는 폭로였다. 그 폭로기사에 이어 브라운은 금방 해고 되었던 바 그러자 그는 여러 매체와의 회견에서 자기가 작년의 시장 선거 때 당시의 그레이 후보 진영으로부터 휀티 시장에 대한 공세를 계속하라는 격려와 함께 상당액수의 돈을 받아 썼노라고 주장했다. 또 자기가 보좌관에 임명되었던 것도 선거 때의 역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돈을 전달한 사람들은 그레이 후보의 선거 사무장과 선거 상담역 두 사람이었다고 브라운은 주장했지만 그 두 사람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또 그레이 자신도 자기는 아는 바가 없다고 공언한다. DC 감찰실장 등은 표면적의 이해 상충이라도 피하기 위해 브라운의 폭발성 높은 주장에 대한 조사를 거절한 상황에서 DC 담당 연방 검찰청이 그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논설 부주간이다가 현재는 칼럼니스트로 있는 콜버트 킹은 ‘그레이의 건곤일척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의 서두에서 킹은 연방법 18장 1001항을 언급하며 브라운 자신과 선거기간 동안 그에게 돈을 주었다는 그레이 선거위원장과 상담역 세 사람에게 그 법규를 잘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그 법규는 FBI를 포함한 연방수사관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감추거나 은폐하는 것이 연방 범죄라고 규정한다.
킹은 법정에서처럼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나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설명을 듣기 전에 한 거짓말도 연방 법규를 어기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그레이는 비서실장을 해임시키는 등 사태 수습의 단계를 밟는 한편 화이트 칼러 범죄 전문 변호사를 고용했다고 알려져 있어 그의 심기와 아울러 3년 반 이상의 시장 임기가 상당히 불안할 것이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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