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국교육
위원회연합회(National School Boards Association)
연례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컨퍼런스에서는 전국 각 처
에서 온 교육위원들을 만날 수 있는데 교육현
안에 대해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누거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유익하
다.
이러한 컨퍼런스에서는 유명 인사들을 기조
연설자로 초청하는데, 필자가 이전에 참석했던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 유명인사들 중에
는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있었다. 올해는 첫 날 기조연설
자가 부시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던 콘
돌리자 라이스였다. 현재 스탠포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라이스 전 장관은, 자신이 어렸을
때 인종차별 대우를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학문적으로나 국가정책부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
다고 하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출신 배경이
아니라 어디에다 목표를 설정하고 가느냐라고
역설했다. 또한, 자녀들의 장래는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이 아니라 결국 각 지역 학군의 교
육을 관장하는 학군단위 교육위원회의 교육행
정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모든 학생들에게 도
전이 되는 수준의 커리큘럼 확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러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더
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의 기조연설 중 필자가 미처 생
각지 못했던 해프닝을 목격하게 되었다. 라이
스 전 장관의 연설 도중 연단 앞쪽에 가까이
앉아 있던 한 중년 여인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병사들의 자녀들
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큰소리로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라이스 국무장관은 연
설을 멈추게 되었고 이 여성이 장내의 보안을
담당하는 경호원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내
보내지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항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성이 끌려 나
가는 과정에 큰 물리력 동원과 소란은 없었
다.
라이스 전 장관이 그 후 연설을 다시 계속하
기 불과 2~3분이 안 되어 이번에는 다른 쪽에
서 또 이라크 전쟁 때 죽은 무고한 이라크인들
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항의하는 사
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였는데 같은 항의
를 대여섯 번 반복하는 사이 경호원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내 보내졌다. 그 후에도 두 명
이 추가로 라이스 전 장관을 전범이라고 몰아
세우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 때 이라크 전쟁 정책에 깊숙이
개입했던 라이스 전 장관의 과거행적을 비난하
는 그룹의 일원들이 라이스 전 장관이 북가주
지역에 와서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직
적으로 벌이는 반대 시위라는 것을 나중에 알
았다. 컨퍼런스 회의장에 출입증을 위조해 갖
고 들어와 앉아 있다 기조연설 때를 맞추어 한
명씩 시간차를 두고 항의시위를 벌였다는 것이
다.
그런데 이날 필자에게 큰 인상을 준 것은, 이
러한 조직적인 항의시위보다도 그러한 시위에
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라이스 전 장관의 태도
였었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크게 당황할 상황은 아니었는지는 몰
라도, 라이스 전 장관은 이러한 돌발 사태에
대해 “민주주의가 조금 시끄러운 부분은 있
지만 독재나 억압으로 인해 강요되는 침묵보다
는 훨씬 낫습니다”라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
유에 대한 예찬론을 기조연설에 즉석으로 넣
어가며 연설을 차분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었
다.
필자도 교육위원으로 있으면서 지역주민으
로부터 교육행정에 대해 비판도 듣고 때로는
다소 거친 항의를 대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나은 교육행정과 양질의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다각적인 견해를 청취할 필요가 있음
을 인정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
선 때로는 불편하고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반대
의견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기회비용으
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동포사회도 우리가 뿌리를 내
리고 살아가고 있는 각자의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정책수립 과정에 과감하고 적극
적인 의사 표현을 했으면 한다. 바로 우리가 살
고 있고 또 우리의 자손이 살게 될 지역의 정
책이 수립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
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언제까
지나 주류가 아닌 주변인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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