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이번 주 12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성적을 매기기엔 너무 이르지만 그가 워낙 한 가지 업무에만 치중해 왔으니 예비평가 정도는 가능할 듯싶다 : ‘절반의 성공’ - 다시 말하면 절반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의 최우선, 아니 유일한 과제는 자신의 선언대로 260억 달러 적자를 해소하는 균형예산 실현이다. 적자의 절반은 지출삭감으로, 절반은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합리적 플랜으로 출발한 것이 석달 전이고 지난 3월24일 112억달러 삭감안에 서명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첫 성공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복지와 대학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해 저소득층의 고통스런 희생을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었으나 공화당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다수당인 민주당은 공화표 도움 없이 자력으로 삭감안을 통과시켰다. 예산안은 주의회 3분의 2가 아닌 과반수 찬성으로 성사시키도록 규정한 주민발의안이 지난해 통과된 덕분이다.
나머지 절반은 공화당의 협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세금관련 법안 통과엔 주의회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년 7월로 만료되는 한시적인 소득세·판매세·차량등록세 인상을 5년 더 연장하여 나머지 적자를 해소하려는 브라운은 세금연장 여부를 묻는 6월 주민투표 실시를 위해 공화당의 협조를 구했다. 상하 양원에서 각각 2표씩 최소한 4표가 필요했다.
공화당 5명이 타협 의사를 밝혔고 언론으로부터 ‘용기 있는 5인’으로 찬사까지 받은 공화의원들과 민주당 주지사의 협상은 몇 주 동안 상당한 진전을 이루는 듯 했다.
민주당 천하 캘리포니아의 만년 소수당으로선 드물게 ‘공무원연금 개혁, 기업규제 완화, 지출 상한선 부과 등 주요정책 개혁을 조건으로 내건 공화당과 경륜에 실력까지 겸비한 주지사의 협상은 양극화된 요즘 정계의 협상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까지 받았으나 3월말 결렬되고 말았다.
주지사의 플랜이 벽에 부딪치면서 순항하려던 예산안은 졸지에 난파의 위기에 처했다.
‘배신자’ 경고가 두려워 협상조건을 무리하게 높여 온 공화의원들의 무책임 때문이다, 노조의 조종 받는 민주당의 무성의 때문이다, 애초부터 “세금인상은 유권자의 승인 없인 안 하겠다”고 다짐한 브라운의 어리석은 선거공약 때문이다…책임공방이 난무하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구의 탓이냐가 아니다.
문제는 ‘브라운의 플랜 B’,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현재의 옵션은 대략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화당을 아예 제쳐놓고 민주당이 세금연장 주민투표 실시안을 주의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옵션으로 공화당의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고 여론의 비난이 높아질 소지가 다분하다.
둘째, 주민발의안으로 만들어 11월 선거에 회부할 수 있다. 발의안 서명을 모으기에 시간이 촉박할 뿐 아니라 5개월이 지연되면서 또 예년처럼 예산안 표류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6월 선거에 비해 통과확률도 낮아질 것이다. 한시적인 현행 세금인상은 7월로 만료되므로 11월 선거에 부쳐질 땐 ‘연장’이 아닌 ‘인상’이 되어버린다. 지난 1월 53%였던 연장 지지여론은 4월 들어 48%로 하락했으며 ‘인상’ 반대는 지금도 55%다.
셋째, 주의회에서 먼저 연장안을 통과시킨 다음, 주민투표로 사후 승인을 받는 안이다. 3분의 2 찬성이 필요해 공화당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나 의회 민주당 지도부가 선호하는 옵션이다. 자신의 선거공약을 깨는 일이지만 브라운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위의 세 가지 중 이도저도 안된다면 네 번째로 최악의 옵션이 남아 있다. 150억 달러 추가 삭감이다. 260억달러 적자를 증세 없이 지출 삭감만으로 해소하는 이른바 올컷 예산(all-cuts budget)이다. 민주당은 이미 “절대 불가”라고 못 박았고 공화당은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리 삭감이라면 죽고 못 사는 공화당이라도 그 결과를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기 때문일 것이다.
4월초부터 브라운은 직접 전면에 나서 유권자 설득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화표밭을 찾아 유권자들을 만나고 타격받을 교육·의료·공공안전 관계자들 모임에 참석하여 공화당에 압력을 행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도대체 150억 달러 추가삭감이 단행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 브라운은 끔직한 악몽이 될 것이라고 경고는 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UC등록금이 현행 1만2천 달러에서 2만5천달러로 오르고 소방 및 경찰 인력도 축소되며 2만명 교사가 해고당할 것…구체적 정보는 아직 단편적이며 루머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금인상이 연장될 경우 주민 1인당 평균 부담액은 1년에 260달러다. 누가 이 돈을 그저 주정부에 주고 싶겠는가. 그러나 나의 260달러가 동료아들의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고, 조카의 교직을 보장하고, 소방관의 빠른 출동을 돕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나 기꺼이 마음을 바꿀 것이다.
이젠 주지사가 올컷 예산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해야 할 때다. 5월 중순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빠를수록 좋다. 무엇이 얼마나 깎여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타격받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세금 연장을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하지 않겠는가.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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