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판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면 온통 카이스트(KAIST) 대학생 자살, 서남표 총장 때리기, 그리고 학생들을 자살로 몰고 간 대학 정책 비판으로 야단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TV에서 백 모라는 방송인의 ‘끝장 토론’이라는 프로를 보았던 것이 계속 내 머리에서 맴 돌았다. 주제는 학교에서 체벌을 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사회자 백 모씨는 그 방송국이 사회에 아첨 하려는 것을 이미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매를 때리는 것은 나쁘다’라는 결과를 끄집어내기 위한 의도적 진행으로 기분이 나빴으나. 그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토론자들이 공부를 하고 출연했는지 주제 발표내용이 한심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사회자가 체벌 반대자를 위하여‘인권’이라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찬성론자를 위하여서는‘교권’이라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토론자들은 그 무대에서 인권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그 가정 하에서 그냥 무대에서 서성거렸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프로를 지켜보면서 나라면 이런 에피소드에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중고등 시절 이 모라는 국어 선생이 있었다. 어느 날 봄이 되자 농가월령가를 읊기 시작했다. 농가월령가에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는 판소리에 추임새 같은 것이 있다. 이때쯤 되면 이 선생님은 자기도취인지 ‘처용가’ ‘정읍사’를 잇달아 읊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는 긴장한다. 또 다시 소창진평(小創進平)이라는 한글 학자 이름이 나올 것이며, 이두 문자, 고문 해석의 첫 개척자가 바로 일본인이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르겠으나, 공연히 혼자 흥분해서 우리들이 미소를 지으면 ‘나를 비웃느냐’ 하기도 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 ‘너는 우리 향가의 맛도 모르느냐’ 하면서 몇 명을 불러내어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종이 치고 선생이 나가면 모두들 씨익 웃으면서 ‘빨리 장가 보내야지 또 도졌어’ 하곤 했다.
사실 우리가 졸업 한 후 얼마 안 되어 장가를 갔는데 그 후 이 모 선생이 어찌 그렇게 얌전해 질 수 있느냐 하며 놀랐다. 사실 그때 이 모 선생의 매는 선생의 사랑의 매 가 아니라 노총각의 그냥 장가 못 가서 폭발하는 폭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것을 받아 들였다.
또 한 에피소드는 고급 공무원의 아들 박 모라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다섯의 딸을 낳은 후 얻은 외아들이었다. 그러니 그 집안 분위기는 오직 그 아들을 위해서 존재 하는 듯 했다. 당시 미국 유학을 가는 학생에게는 2년 반이 아니라 일 년 복무를 마치면 제대를 시켜 주는 특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다니다 군대를 갔다. 당연히 온 집안 식구가 논산에 매주 면회를 갔었고, 그의 어머니가 백방으로 소위 빽과 돈을 써 가며 후방 편한 곳으로 배속 되도록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전방으로 배속 됐던 아들로부터 하소연, 불평, 투정의 편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 여섯 장씩 왔고,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원망하고 안절부절하였다. 그런데 그 후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첫 휴가로 집에 왔을 때 제일 놀란 것은 그의 다섯 누이들이었다. 상전 같이 모시던 동생이 자기들을 상전으로 대해주는가 하면, 군대에서 얻어맞던 이야기부터 온갖 고생을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등 응석받이에서 확 트인 180도 달라진 그의 태도를 보고 말이다. 온 집안 식구들은 ‘군대가 사람 만들었어’ 했고, 그의 아버지는 빙긋 웃었다.
다 자란 청년기 이전에 이렇게 부당하게 매도 맞아도 보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 자라는 것을 인권의 눈으로 보면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도 한 인간의 인권이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는데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 한다. 인체에 손상이 갈 만큼의 지나친 폭력은 반대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인내와 부당한 처우를 헤쳐 나가는 슬기로움을 배우는 인격 형성을 위해 학교 체벌을 찬성하며 그러한 풍토이었으면 지금 KAIST 대학의 연쇄 자살도 없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도피와 인내’의 교육을 못 받은 과잉보호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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