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람들이 워싱턴 하면 미국 초대 대통령을 연상할 것이다. 키가 훤칠하며 당시 유럽 어느 나라 왕족에 빠지지 않으리만치 귀족적으로 생겼다고 한다. 하기야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다음 그를 미국의 조지 1세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런 이름을 가진 미국 사람은 한국에서 본 미군 흑인 병사였다. 그를 보며 의아스러웠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성씨의 중요성을 배워온 우리에게는 흑인이 미국 국부의 이름 갖는다는 게 될 법도 아닐성싶었다. 그 이후 이곳에서 대학 다닐 때 워싱턴이라는 동급생을 만난 기억이 나는데 그도 역시 흑인이었다. 그리고 연예계 사람들 운동선수들 중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유명한 남자 배우 덴젤 워싱턴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번 내 칼럼에서 언급한 남북 전쟁 후 흑인 교육자 부커 T. 워싱턴 같은 이도 들 수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생각 이외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얼마 전 신문에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다룬 특집기사가 실렸다. 우리 관심밖에 일인데 미국 전역에 16만 명이 이 성씨를 가진 인구 90%이상이 흑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9천여 명이 백인이며 나머지는 히스패닉과 아세아 사람이라 한다. 흑인들이 노예 생활할 때 흔히 주인의 성을 따기도 했지만 백인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은 혼혈도 적지 않다. 지금도 남부 농촌에 가면 같은 성을 가진 흑인과 백인이 어울려 산다. 공공연한 비밀은 그들이 같은 조상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때에 따라 서로 돕고 있다고 도 한다. 지난번 대통령에 출마한 존 매케인의 조지아 가족은 얼마 전부터는 패밀리 리유니언에 같은 성을 가진 흑인들을 초청한다고 한다. 그렇게 외면하려던 백인 후손들이 자신들과 피를 같이 나눈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초대 대통령조지 워싱턴은 흑인 정부를 두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도 120여명의 노예를 가졌는데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사람대우를 했다는 일은 널리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 12명이 노예소유주였는데 조지 워싱턴이 처음으로 노예해방 문제를 거론했다. 알기로는 그의 성을 갖고 태어난 흑인은 없는 것 같은데 토마스 제퍼슨은 경우가 다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제3대 대통령은 역임한 역사에 남는 인물이다. 그는 셀리 헤밍스라는 흑인 여자와 여러 명의 자녀를 두기까지 한 노예주였다. 이것이 흑인들이 제퍼슨 성씨를 갖게 된 계기라고 한다. 지난 몇십 년 전 역사가에 의하여 이 사실이 알려지며 제퍼슨 성을 가진 백인들이 다른 성으로 바꾸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더구나 남부에서는 그들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흑인 피가 두려워서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워싱턴이라는 이름에 관한 통계가 신문에 발표되면서 흑인들도 놀랐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외로 미국 전역에 9천여 명의 백인 워싱턴이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은 남북전쟁 이후 정식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성을 묻는 선생에게 워싱턴이라 한 게 그의 성이 돼버렸다고 그의 자서전에 쓰여져 있다. 그는 성이 없다가 그런 식으로 워싱턴이 된 흑인 중에 한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붙여진 이름일 지라도 그 이름에 대하여 흑인들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도40여년 이곳에 살며 백인 워싱턴을 꼭 한사람 만난 적이 있다. 아이다호 출신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큰 규모의 건설 회사를 하고 있었다. 이름 때문에 흑인으로 알고 정부 계약에 많은 혜택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우리식 생각으로 성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다는 게 자랑스럽지는 않았을 태고 그렇다고 내놓고 이야기할 처지는 못 될 것이다. 이곳에 몇 십 년 살며 이런 일들이 눈에 뜨이고 이사회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우리도 한 인종집단에만 자신을 국한시키지 말고 우리 주위를 돌아보며 사는 그런 지혜도 가져야겠다. 지금까지 미국사회의 일원으로 역경을 헤치고 살아온 흑인 워싱턴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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