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에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경험을 통해 온 몸으로 느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얼마 전 같은 직장의 C 씨가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퇴근길에 자기의 집까지 차편을 제공해 줄 사람을 찾는 내용이었다. 주소를 보니 내 집과 지척간이었다. 이 백인 여인은 직장 최고 상사의 특별 보좌관으로, 도움이 필요해 질문을 보내면 종종 성의 없이 대답하고 사람을 얕잡아보는 교만한 태도 때문에 사실 나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사람이다. 따라서 조금은 망설였지만, 가까운 곳에 살면서 모른 체하면 마음이 불편하겠기에 회신을 보냈다. 그 날 한 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큰 망설임 없이 도움을 자원했는데, 그게 아니라 매일 출퇴근시 차편이 필요하다기에 조금 당황했으나, 재택 근무날 외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C의 남편은 우주항공국의 물리학자이며 우주 비행사로 잘 알려졌는데, 오랫동안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얼마 전 타계했으며, 이 여인 남편의 병시중을 들면서 본인도 유방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것을 동료로부터 들었다. 이 역경 가운데 심한 정신적 타격으로 우울증으로 고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로 근무 건물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차편을 주기 위해 만난 이 여인의 달라진 모습에 너무나도 놀랐다.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듯 했고, 손을 떨며 자동차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상상 밖의 모습이었다. 그 후 약속대로 아침저녁으로 같이 출퇴근했는데, 같은 차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딴 곳에 있는 듯, 아니면 매사에 관심이 없는 듯 전혀 한마디도 하지 않기에 좀 어색하고 답답한 시간들을 보냈다. 들은 대로 만사에 의욕을 잃은 듯 우울증의 증세가 역력한 이 여인을 대하며 나 자신 과거에 우울증으로 시달린 어두운 시절이 있기에 그 고통을 느끼며 마음이 참 아팠다.
한편 나의 경험으로 인해 C 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여러 날이 지난 후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대화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간간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아들은 공군 비행 조종사로, 딸은 약학대학 학생으로 모두 타주에 거주하며, 형제자매도 모두 멀리 살기에 남편의 타계 후 본인도 투병하며 혼자 사는 외로운 처지인 것을 알게 되어 참 마음 아팠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전해졌는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가운데 나의 과거의 고통을 솔직히 나누며 그 몹쓸 병을 싸워 이긴 나름대로의 방법을 조심스럽게 나누니 경청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을 강조하며 나 자신 미국교회에 출석하는데 원하면 같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차편을 제공하겠다고 하니 관심을 보이며, 자기도 과거에는 예배에 참석했으나 현재는 교회 출석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었고, 조금씩 예전의 생기있는 모습을 되찾는듯 하더니, 하루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혼자서 운전하고 수퍼마켓에 다녀왔노라고 했다. 다음 날 부터는 본인이 운전하여 출근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자신이 없다기에 진정 기쁨으로 격려하며 나는 전화 한통이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그 후부터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 문제없이 운전을 하고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 주가 지난 후 동네의 샤핑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이 자매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나를 포옹하더니, 당신 때문에 자기의 상태가 이렇게 좋아졌다고 감사를 표했다. 물론 예의상 그렇게 말했겠지만, 아무튼 이 여인의 많이 치유된 모습에 진정 기쁘고 감사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한 본인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할 수 없이 기쁜 일이며, 인간의 부족과 약점까지라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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