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7월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많은 여성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여름 저녁, 대회장 안은 밖의 날씨보다 한층 뜨거웠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려고 미 전국에서 모여든 인파까지 더해 목청 높이 외치며 발을 구르고 스카프를 흔들어대며 울고 웃는 환희에 찬 여성들의 거대한 물결로 넘쳐났다.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제럴딘 페라로 연방하원의원이 무대로 올라왔다. 미 주요정당의 첫 여성 부통령 후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태리 이민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사랑하게 된 새 땅에서 부통령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미국은 우리 모두에게 꿈이 실현될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난 지금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장벽정도가 아니라 마치 댐이 무너지는 듯한 함성과 갈채는 무려 8분이상 계속되었다. 현장의 감동과 열기는 TV를 통해 미 전국으로 전해지면서 그 순간만은 정당,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공감대를 형성해냈다.
남성들은 물론 지금의 젊은 여성세대도 그 열광을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차별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웃사이더로 소외당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 암담한 분노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페라로의 후보수락 스피치는 다음 세대를 향한 강한 확신의 메시지였다. “우리가 열지 못할 문은 이제 없습니다. 우리 실현의 한계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면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12년 혈액암과의 투병 끝에 지난 주말 75세로 타계한 페라로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스토리였다. 이태리에서 이민 와 식당을 경영하던 아버지는 불법영업 적발로 법정에 출두해야하는 날 아침 심장마비로 숨졌다. 페라로가 8살 때였다. 한인엄마들 못지않게 자녀교육이 최우선이었던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하며 페라로와 남동생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성적이 뛰어났던 페라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마친 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법대에 입학했다.
낮에 일하며 야간강의를 들어야 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입학부터 쉽지 않았다.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입학담당관은 경고하듯 다그쳤다. “자네가 한 남학생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 아는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하여 세 자녀를 키우며 13년을 지낸 후에야 뉴욕 퀸즈의 검사로 취직한 후에도 이 같은 차별은 여전했다. 남성검사들보다 봉급이 적었다. 검사장에게 왜냐고 따졌다. “당신은 남편이 있잖아?” 화가 나서 되물었다. “남자들은 아내가 있잖아요?”
원래 중도보수였던 페라로는 검찰에서 가정폭력 및 성범죄 희생자 특별반을 이끌다가 리버럴로 돌아섰으며, 뉴욕주 연방하원의원으로 남성천하 의회에 입성하면서 3선 동안 여권보호의 기수로 활약했다. 담당검사가 위궤양이 생길 정도로 참혹한 빈민층 범죄희생자들의 환경을 목격하며 사회정의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고, 불평등한 여성의 권리가 남성의원들에 의해 보호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으며 동등권 실현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그해 대선에서 참패했다. 호황기에 인기 높은 현직 레이건-부시 팀에 대한 도전은 애초 승산 없는 게임이기도 했고 페라로 선풍마저 남편의 재정관련 구설수로 발목을 잡히며 처음의 열기를 유지하지 못했다. 선거 패배후 페라로는 2번 연방상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터프하고 야심찬 하원의원으로 계속했더라면 정치인 페라로의 경력은 훨씬 길고 화려했을지도 모른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페라로는 “나의 부통령 출마는 많은 여성정치인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는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힐러리 클린턴에서 새라 페일린에 이르기까지 다음 세대를 위해 닫혔던 문을 열어주고 없었던 길을 닦아주며 지원해온 여성정치의 선구자답게 그는 경험에서 터득한 충고를 남겼다. “한 여성이 출마할 때 마다 모든 여성이 승리하는 것이다. 출마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84년 당시 20여명이던 여성 연방의원이 현재 90여명으로 늘어난 동안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한 환경도 훨씬 좋아졌다. 남성들의 성역이었던 법대와 의대엔 여학생 수가 더 많아졌으며 미국의 외교를 책임진 여성 국무장관이 3명이나 배출되었고 여성 연방대법관도 3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여성을 막아온 장벽들은 계속 무너질 것이다. 여성뿐이겠는가.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을 막아온 장벽들도 하나씩 무너질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차별도 발붙일 수 없는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온 페라로 같은 선구자들에게 감사해야 할 결과다.
“미국의 첫 여성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싶다”던 페라로의 오랜 꿈이 실현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꿈의 실현을 함께 기다리며 오늘 장례식이 거행될 제럴딘 페라로의 명복을 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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