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해 본 것은 이곳에 이민 와서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1975년도였다. 당시에 ‘Wang’이란 이름의 회사에서 만든 초기 단계의 탁상용 컴퓨터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며 사용했다.
워드프로세서를 처음 써본 것은 대학교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였다. 그 전까지 수업과제로 주어진 페이퍼는 모두 타자기를 사용해 작성했는데 졸업논문은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Wang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한 번 쓴 논문을 저장해 나중에 다시 맘대로 교정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었다. 타자기를 사용했을 때 한 자의 오타가 나더라도 바로 잡느라 고생하던 것과 달리 그 편리함의 차이란 하늘과 땅이었다.
통신 분야도 지난 30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필자가 처음 변호사 일을 하기 시작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팩스머신의 사용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는데 당시엔 텔렉스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텔렉스는 사용료가 제법 비싸 쉽게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장거리나 국제전화 요금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필자가 처음 미국에 왔던 1974년 한국으로의 국제전화 요금은 3분 기본에 $10.00이었다. 그 당시 $10.00면 자동차 휘발유 20갤런 정도를 살 수 있었던 만만찮은 금액이었다. 그 사이에 통신기술의 발달과 비용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많은 편리를 가져다주었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친지들과 인터넷을 통해 추가비용 부담 없이 화상대화를 할 수 있게끔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신기술의 발달이 삶의 질을 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린 점도 있다. 필자가 요즈음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장비는 블랙베리이다. 블랙베리로 이메일도 확인하거나 보내기도 하고 급하게 필요한대로 인터넷 찾기로도 사용한다. 그리고 여러 모임 스케줄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위원회가 여러해 전에 교육위원들에게 사용하라고 지급해 준 것인데 처음에는 가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하고 뭐 그렇게 상시로 이메일을 확인하여야만 하느냐고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사용해보니까 여러 가지로 편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챙기게 되는 것이 블랙베리이다.
그런데 이제는 블랙베리 사용에 중독이 되어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과거에는 화장실에 갈 때는 의례 신문을 들고 갔었는데 이제는 블랙베리도 꼭 같이 갖고 간다. 그런데 블랙베리의 사용은 대부분 업무용이므로 결국은 화장실까지 가서도 업무를 보는 셈이다. 운전을 하던 중 블랙베리에 이메일이 들어와 있다는 표시를 볼 때 손을 대고 싶은 유혹과 씨름하기도 한다. 또한 블랙베리에 대한 집착이 도를 지나쳐 잠자리에 들 때에도 손에 닿을 만한 곳에 놓아둔다. 한밤중에 가끔 깨는데 그 때 또한 블랙베리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새벽 세 시에도 이메일을 열어보고 그에 대한 답장까지 보내는 중증을 앓고 있음을 발견한다.
팩스머신 사용도 귀했던 시절에는 서류들을 주고받을 때에는 우편을 통해서 했기에 일 처리를 하는 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한 번 서류를 보내면 그에 대한 답이 올 때까지는 며칠은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팩스머신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서류들을 즉각 보내고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모든 것을 이메일로 보내어 처리하는 시대가 되어 그것이 극에 달한 것을 느낀다. 그러니 현대의 전산, 통신문명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질은 과거에 비해 편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 없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목 졸림 상황의 수준으로 떨어진 듯하다.
하루가 달리 빨라지는 통신 속도에 삶을 맞출 때 자신의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먼 앞날도 깊게 생각해 보는 여유가 덩달아 사라져가 버림을 느낀다. 그리고 문제는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블랙베리를 허리 옆에 차고 24시간 살아가는 삶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들어 푸른 하늘을 쳐다 볼 수 있는 한가로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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