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버지는 동년배 친구들 부친들에 비해 나이가 젊으신 편이시다. 6.25 전쟁 당시 1.4 후퇴 때 북한서 홀로 남하하신 후 가족이 그리워 일찍 결혼하셨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필자의 아버지가 다른 친구들의 부친들보다 젊은 나이라는 게 어떨 땐 좀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필자 스스로가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부터는 아버지께서 젊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좀 더 건강하게 아주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자식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은퇴하셨는데 요즈음 가장 즐기시는 것이 라인댄싱이다. 아버지는 필자와 달리 원래 몸도 유연하시고 리듬감 있게 스텝도 잘 밟으신다. 이 전에는 사교춤도 잘 추셔서 주위의 친구들을 제법 여러분 가르치시기까지 했었다. 라인댄싱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은 남달라서 때로는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비디오 동영상을 보시면서 스텝을 공부하시기도 한다. 자식 된 입장에서는 아버님이 은퇴 후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으실 때 이렇게 특별히 좋아하시는 취미를 가지고 계시다는 게 다행스럽다. 또한 체력단련에도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시다. 이것도 필자가 갖추지 못한 부분이다. 그래서 필자의 집에 수리가 필요한 것들이 생길 때에는 아버지께서 핸디맨이 되어 도와주신다. 전기나 플러밍 문제뿐만 아니라 부서진 가구까지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도록 해주시는데, 사실 아버지는 당신이 은퇴 후 아직도 이렇게 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일부러 아버지께 더 부탁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눈썰미도 좋아 조립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경우 필자는 조립설명서를 보고도 쩔쩔매는 반면 아버지는 그냥 완성 제품의 모습이 담긴 사진만 보고서도 조립을 척척 해내신다.
그런 아버지께서 최근 몸이 불편하시다고 전화를 주셨다. 두 주 정도 배가 불편해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단다. 필자의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시는 아버지를 분명히 그 사이에 필자가 가서 뵈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말씀이 전혀 없으셨는데 사실 그동안 식사를 못하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속상한 마음에 아니 몸이 불편하시면 왜 바로 의사에게 찾아가 보지 않으셨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그러다 말겠지 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고집도 세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냥 참고만 계시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화 통화한 그때는 주말이어서 월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의사에게 전화해 바로 위 내시경 검사 예약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가장 큰 걱정은 사실 당신 자신이 아니었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몇 해 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셔서 사실 몇 년 동안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돌보고 계셨다. 그런데 혹시 당신께서 수술이라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머니를 누가 돌보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 가장 큰 걱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동안 워낙 아버지께서 건강하시고 어머니를 잘 돌보아 주실 수 있었기에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점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이었다. 너싱홈으로 모셔야 하는 건지, 그렇다면 바로 입주할 수 있는 너싱홈은 과연 있을지, 그리고 너싱홈으로 가 계신다면 비용은 얼마나 될는지 등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들이 막 떠올랐다. 그동안 주위에서 연로하신 어른들이 접하는 이슈들에 대해 그냥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것들이 이렇게 갑자기 코앞에 닥칠 줄 미처 생각을 못했고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께는 우선 일단 내시경 검사결과를 기다려 보는 것이 순서니까 다른 일들은 미리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준비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간병인 고용 가능성 그리고 혹시 건강보험이나 메디케어 등으로 커버되는 부분은 없는지도 서둘러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내시경 검사결과가 괜찮았다. 수술을 요하지는 않고 약만 조금 복용하시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그 동안 걱정했던 여러 가지 점들을 더 이상 바로 해결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연세가 드신 부모님을 둔 필자로서는 미리부터 준비를 했어야 되는 부분들에 소홀히 했음을 반성하게 하는 경험이었다.
사실 그동안 불경스러운 생각이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묻히실 장지 관계도 거론을 못했는데, 이번 일로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님께서 두 분의 장지를 미리 손수 준비해 놓으셨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괜히 슬퍼진다. 그냥 오랫동안 살아계실 수는 없을까? 왜 우리 모두는 꼭 헤어짐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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