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장에 가서 배추 두 포기 또 다른 몇몇 가지를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온 힘을 다해 배추를 잘라서 큰 그릇에 넣고 여러 번 씻은 다음 물기를 빼고 나니 다음 단계가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가정부한테 물어 보았으나 그 아이도 청소나 하고 밥이나 할 줄 알지 김치는 한 번도 담아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궁리 끝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하고 우리 집에 좀 와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마침 자기도 집안에 간난 아기와 둘이 있어서 꼼짝 할 수가 없으니 그것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했던가? 씻은 배추를 그릇에 담아들고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까지 가서 그 친구가 일러주는 대로 소금을 뿌려놓고 다음은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대로 종이에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참으로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신혼 첫 주에 어이 없이 얻어 맞은 한 펀치였다.
결혼 전 친구였던 그 사람한테 “나는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부자도 맏아들도 아닌 막내 아들과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 친구 왈 “어느 부잣집에 가서 망쳐 놓으려고 부잣집 맏며느리 타령이냐”며 “부잣집 구하기도 힘들지만 맏며느리 노릇 하기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어이 없는 경우를 당하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밥도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내가 못 미더워 친정 어머님은 결혼을 한다니 친정 근처에 집을 사서 살라고 강하게 권유하시는 것을 나는 조금 외곽지대로 나가 신혼 기분을 내 보겠다고 양옥집을 새로 짓고 시작했다. 친정 어머님은 못 미더워 가정부를 미리 구해 훈련까지 시켜 같이 들어가게 했음에도 어머님이 예상했던 대로 일은 벌어졌던 것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저녁밥을 먹고 낮에 있었던 얘기를 하니 빙그레 아무 말 없이 웃는 그의 얼굴에 야릇한 감정을 느끼며 무슨 말이 나오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동안 침묵을 하더니 무엇 하러 그 힘든 김치를 담그려 하였느냐는 것이었다. “기왕에 배추를 사왔으면 김치 대신 시원한 배추 된장국이나 끓이면 되지 어려운 김치까지 담그느라고 고생을 했느냐”며 다시 한 번 빙그레 웃는다. 나는 그 다음으로 연결되어 나올 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은 그것으로 지나갔다.
나는 그날 저녁 그이의 입에서 부잣집 맏며느리 얘기를 기대 했는데 웃음으로 넘어가주니 바짝 날을 세우고 있던 나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김치 외에도 여러 가지를 미리 배우지 못한 것, 경험해 보지 않고 피하기만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가장 유능한 자는 부단히 배우는 자라고 ‘괴테’가 말했던가? 무엇이든 배웠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편하기 위해 피해서 살아왔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졌다.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고 지나친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은 현대인의 정신적 범죄의 하나”라고 인도의 케리 여사가 한 말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면 되겠지, 어떻게 되겠지, 별 것 아니야 하는 식으로 배우려 노력하지 않는 그 자세야 말로 자기 자만이요 교육의 모독이 아닌가!
그러기에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배우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딘 가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살아가는 인생, 여기에 인생의 값어치가 있다. 도둑질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배우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칸트’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갈고 닦고 연마시켜 가며 살아가는 존재, 이것이 인생이요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의 한 가지가 아닐까? 준비를 잘하고 기다렸더라면 부잣집 맏며느리도 되지 않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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