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워싱턴 디씨에서 한 경제 클럽(The Economic Club)이 주최한 저녁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단체는 정기적으로 유명 인사를 초청해 얘기를 듣는다고 하는데 이 날의 초대 손님은 빌 게이츠였다.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서나 접했던 빌 게이츠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었다. 사실 사교성도 조금 부족하고 말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별로 재미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자체만 가지고서도 흥분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날 모임의 사회는 주최 단체의 회장인 데이빗 루빈스타인이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모임이 있던 날, 루빈스타인이 케네디센터에 천만불의 기부금을 희사했다는 뉴스를 모임을 향해 가고 있던 필자의 차 안에서 듣게 되었다. 칼라일그룹의 창업자 루빈스타인이 지금까지 케네디센터에 기부한 금액은 2천3백만불 정도가 된다.
빌 게이츠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이며 지금도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계속 세계최고 부자의 위치를 누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재산 560억불을 소유한 채 2위로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에 부인과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 빌 엔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까지 모두 합친다면 880억불 가량의 재산규모로 명실공히 그 누구도 감히 바라볼 수 없는 부동의 최고 갑부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빌 게이츠의 얘기는 루빈스타인 회장과의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말도 잘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다녔던 하버드 대학의 신입생들은 모두 하버드 야드라고 불리는 메인 캠퍼스 안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산다. 2학년 때부터는 야드를 떠나 하우스라고 불리는 상급생 기숙사로 옮겨가게 되는데 빌 게이츠는 찰스강가에 있는 전통적인 하우스를 택하지 않고 하버드와 통합한 래클리프 여자대학 기숙사들이 있는 쪽의 기숙사를 자원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찰스강가에 있는 기숙사들에서의 남녀 학생비율이 3대 1인 반면, 래클리프쪽은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지역이라 그 비율이 1대 1이었기에 자신에게도 여학생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래도 별로 성공을 못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빌 게이츠가 결혼한 것은 이미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1994년으로 38세의 나이가 됐을 때였다.
2008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주로 재단의 일에 전념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재단의 주요사업이 세계의 건강증진과 교육기회 향상이라고 했다.
빈곤한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몸이 건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는 지론에서라고 했다. 각종 질병퇴치와 의약 연구에 앞장서서 지원을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에서란다.
그리고 공교육의 개혁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교사평가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역설을 한다.
빌 게이츠는 몇 년 전 그의 모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대학은 졸업하지 못했다. 1975년도 3학년 때 그 해에 창립한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 일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학업포기 결정에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의 상당한 반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날의 대담 후 질의응답 시간에 이에 관련된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에 대한 빌 게이츠의 대답이 필자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다.
그 질문은 만약에 빌 게이츠가 세 자녀들 중에 그 누구라도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나설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먼저 웃음을 지은 빌 게이츠는 별로 주저 없이 자신의 경우는 예외적이었지 누구나 그렇게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에 자신의 자녀들 중 그 누구라도 중간에 학업을 그만 두겠다고 할 경우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반대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자기는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빌 게이츠도 다른 부모들과 별반 다름없이 자식들이 정상적인 코스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부모의 마음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덧붙여 이다음에 자녀들에게 남겨 줄 유산도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규모는 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안 해도 되는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냥 부자 부모를 두어 본인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호의호식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부모로서의 배려심도 엿볼 수 있었다. 본인의 삶도 그렇지만 아버지로서도 본받을 점이 많음을 알게 해 준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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