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뉴욕에서 열린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많은 결혼식이 그러하듯, 아름답고 화사한 신부의 입장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신랑을 보면서, 우리 하객들은 새로 태어나는 젊은 부부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오늘 주례사의 요지는 ‘죽어야 산다’입니다”라고 주례사를 맡은 노 목사께서 주례사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 순간 문득, 축복해야 하는 결혼식에서 죽어야 한다고 주례사를 시작하다니 하고 의아해했다.
그러나 계속하는 주례사는 우리 부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주례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배추가 김치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번을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땅에서 뽑힐때요, 두 번째는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이고, 세 번째는 소금에 절일 때이고, 네 번째는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배추가 절일 때이며,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입안에서 씹힐 때라는 것이다.
이렇게 다섯 번을 죽어야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이 탄생한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위해 부부도 죽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행복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팔순이 넘으신 주례자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주례사의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특별히 결혼식에서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특별한 뜻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분은 자신이 35년간을 목회 하면서 수많은 부부들과 상담을 했는데, 부부싸움과 가정 파탄의 근본 이유는 결국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짜디짠 소금처럼 또는 매운 고춧가루처럼 톡톡 쏘는 말들을 쏟아 낼지라도 그저 죽은 척하고 져주면, 부부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결국은 미안한 마음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부생활을 하면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겠으며, 부부싸움을 할 때는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인데 상대에게 져준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내 경우도 그러했다. 36년 전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타우슨 대학교에 재학했고 아내는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그 4년간의 결혼생활은 정말 달콤한 신혼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결혼생활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친 우리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갔고, 부부싸움의 빈도는 잦아졌다. 내가 학생 신분이라 베이비시터를 구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아내는 병원에서 밤에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했다. 그리고는 나와 교대해 아이를 보아야 하니 피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숙면을 하지 못한 나는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졸기가 일쑤였고 졸업식을 앞두고 취업 인터뷰도 하느라고 그야말로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둘이 부딪치면, 별것도 아닌 것 갖고도 부부싸움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또 부부싸움을 시작하려 했는데, 아내의 태도가 변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정말 절여진 배추처럼 그저 입을 꼭 닫고 상대를 않는 것이었다. 나도 혼자 떠들기가 멋쩍어 그냥 끝냈다. 그렇다고 내가 부부싸움에서 이겼다고 기분이 우쭐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후회의 감정이 나를 엄습해왔다.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으면 자면서도 저렇게 괴로워하고 있을까? 참지 말고 오히려 싸움을 하지 않은 아내가 너무나 측은해 졌다.
지난 1월말, 두 아이들이 아내의 60회 생일을 축하해주며 마련해 준 캐리비언의 6개 섬나라를 도는 크루즈를 다녀왔다. BWI 공항을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 속에 “이별의 순간이 될 때까지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 한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수많은 부부들이 사별 후에야, 자기 배우자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을 발견하고 후회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흔히 이야기하는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 모든 부부들이 명심 해야 할 좋은 경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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