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모자랐는가요/ 아니면 무엇이 그다지도 모자라/ 너 울고 나 울고/ 모두가 우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억세게/ 살아가자던 약속 먼저/ 버리고 가는가 말입니다”(북한누나의 편지 가사)
LA 매스터코랄이 세계초연한 ‘무궁화: 샤론의 장미’는 일종의 진혼곡이라고 느껴졌다. 오천년 역사가 ‘한’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을 달래는 위혼곡이자 부모형제와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의 노래요, 모든 단절된 것들이 만나고 닿고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희망의 노래.
칸타타 혹은 오라토리오면서, 바이올린 콘첼토이고 합창곡이기도 한 이 대작은 세계인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한국의 혼과 한, 현대음악으로 표현해낸 반만년 한반도의 숨결이다. 완전히 컨템포러리 뮤직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니퍼 고의 바이올린 연주는 정말 특별했고 훌륭했다.(인터뷰 24면)
LA타임스는 ‘장미가 강력한 합성으로 활짝 피어났다’는 제목을 단 리뷰에서 ‘무궁화’ 공연을 극찬해마지 않았다. 이 기사는 ‘무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국제적인 관점과 풍성한 아이디어를 가진 마크 그레이는 한국적 멜로디와 리듬의 요소를 슬픈 소리와 시적 분위기로 정교하게 짜 넣어 듣는 사람을 기분 좋은 가사상태에 빠지게 했다”며 “45분의 강렬한 공연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렸다”고 호평했다.
이런 곡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작곡가에게서 나왔고,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외국인 합창단과 연주자들에 의해 초연되었다는 사실은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한국의 이야기와 합창음악이 주류음악계에 소개되고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으니 축하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여러모로 이번 콘서트는 이정표적 공연이었고 대성황이었다. 만석으로 꽉 찬 홀이 반 이상 미국인들로 채워진 것도 놀라웠다. 사실은 거의 한인들만 올 줄 알고 한국식당에서 거나하게 저녁을 먹고 갔는데 주변에 온통 미국인들이라 움칠했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대다수 시즌티켓 홀더들이라고 했다. 한인들은 수도 없이 합창단을 조직해 앞다퉈 연례행사로 연주회를 벌이면서도 전문합창단의 공연에 티켓사서 가는 일은 없는데, 평소 노래를 즐겨 하지 않는 미국인들이 합창 콘서트에 열심히 오는걸 보면서 음악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후원이 부럽게 느껴졌다.
공연 후 백스테이지에서 열린 리셉션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유명작곡가 존 애덤스도 참석해 공연을 축하했고, LA매스터 코랄의 지휘자 그랜트 거숀은 물론 마크 포스터 이사장과 보드멤버들, 총감독과 단원들, 스탭 모두가 한인들을 환영하며 큰 파티를 열어주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본보 장재민 회장 부부를 비롯 김재원 문화원장과 김종문 부원장, 작곡가 이호준과 벤 지수 김 등 음악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 역사적 공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작곡가 마크 그레이는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은 멋진 공연이었다”고 극도의 만족감을 표시했고, 제니퍼 고는 “한인 청중이 이렇게 많은 공연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이날 ‘메나리’와 ‘아리랑 환상곡’의 솔로이스트를 맡아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 소프라노 여선주씨는 “매스터 코랄 단원으로 12년을 노래했는데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너무 행복하고 너무 감사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또 “동료 단원 여러 명으로부터 한국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고 “한국의 혼과 한이 담긴 음악들이 시공과 인종을 초월해 영혼을 씻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인 청중들이 너무나 성숙해서 놀랐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그동안 우리는 음악회에서 자주 보는 무매너 한인들에 관해 통탄하곤 했는데 이날 공연관람 태도는 주류음악계가 놀랄 만큼 훌륭했다. 특히 5악장으로 구성된 ‘무궁화’ 연주에서 악장 사이에 단 한 번도 박수소리가 나오지 않아 얼마나 졸였던 마음이 놓이던지.
‘무궁화’의 세 주역 마크 그레이와 제니퍼 고, 그랜트 거숀은 입을 모아 “이 음악은 브릿지이고 커넥션”이라고 했다. 남과 북을 잇는 다리, 사람들을 잇는 다리, 지상과 낙원을 잇는 다리, 청중과 연주자들을 이어주는 다리… 이 다리가 계속 이어져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또 한국에서도 ‘무궁화’ 공연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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