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한 마디로 북새통이었다. 멀리서 간간히 포성이 들려온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저마다 비행기를 타려고 아우성이다. 무작정 달려 나갔다. 그러나 탈 비행기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힘없는 본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한국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국적기가 급파된 것이다. 여객기 꼬리에 부착된 태극 마크. 그 태극 마크를 TV 브라운관에서 목격하는 순간 그 분의 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 계신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는 이랬다.
3.1운동이 난지 얼마 후 온 집안이 중국 상해로 떠났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해서다. 당시 어린 소녀였던 그 분은 그런 내용은 잘 알지 못했다. 단지 할아버지가 일경에 붙잡혀가 옥고를 치른 일 등만 기억의 단편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상해는 별천지였다. 현대식 고층 건물을 처음 보았다. 눈이 파란 외국인도 처음 접촉했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했다. 무슨 행사 때면 외국인 조계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는 늘씬한 이태리 병사의 모습. 이런 것들은 어린 소녀의 상상을 한없이 자극하기만 했다.
‘난리가 났다’고 어른들이 수근 댄다. 그럴 때마다 같은 또래의 사촌과 함께 항구로 뛰어나갔다고 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세계 각국의 군함이 들어오고 열 지어 행군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어서였다.
또 난리가 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항구로 나갔다. 영국군이, 프랑스군이, 미국군이, 그리고 일본군까지 군함에서 내린다. 저마다 자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사촌과 함께 계속 기다렸다고 했다. 한국군도 오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섭섭하던지. 사촌 언니와 함께 부등 켜 앉고 그만 울고 말았지. 어린 나이지만 그 때 처음 망국의 한 같은 걸 느꼈었지.” 그 분의 회고다.
그리고 근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지긋지긋하던 일제도 패망했다. 중국은 공산화 되고. 그리고 6.25, 피난 생활, 4.19, 5.16 등으로 이어지는 모진 세월을 뒤로 하고 미국에서 살던 어느 날 TV 화면을 정신없이 응시하게 됐다.
1차 걸프 전쟁이 터졌다. 공항은 철수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다시피 했다. 그 광경이 생중계된 것이다. 철없던 어린 소녀시절 상해에서의 그 때가 떠올려졌다. 그리고 태극 마크가 선명한 대한민국 국적기를 보는 순간 눈물이 창연히 흐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살았다.” “집에 갈 수 있다.”
실탄이 비 오듯 날라든다. 치안부재 상황에서 사람들은 폭도로 변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더욱 비참한 것은 제 3세계,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 근로자들의 운명이다.
공항까지, 항구까지 가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도착해도 탈 비행기가 없다. 기다려 주는 함대도 없다. 무작정 한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것도 경비원들의 무자비한 몽둥이세례와 비를 맞아 가면서. 그들이 맞은 운명이다.
그 리비아에서 들려온 환호의 외침이다. 그들을 태울 구원선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순간 인도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이집트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온 근로자들은 서로 부등 켜 앉았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한국의 대우건설이 리비아 현지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대형 여객선 3척을 투입했다. 이 3척의 배로 철수시킬 대우건설 근로자는 모두 2772명이다.
그 중 한국인은 164명, 나머지는 모두 제3세계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현대건설도 여객선 2척을 빌려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수르테 항에서 철수시킨 근로자는 730명이다. 그 중 한국인은 94명이다. 나머지는 역시 모두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이들에게 고국 행 비행기 티켓까지 마련해 줄 예정이다.
다른 나라 건설업체들은 대개 3국인 근로자를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건설 회사들은 다르다. ‘제3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두 동료’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생사를 같이 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문득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국가란, 정부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의 단편들이다. 그리고 생각은 이내 한 가지에 머문다. ‘한류(韓流)’라는 단어다. 대중문화뿐이 아니다. 기업정신에 있어서의 ‘한류’, 다시 말해 그들 제3국 근로자들이 흘린 환호의 눈물 속에서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업 한류’의 가능성이 새삼 발견되어서다.
그리고 또 다시 떠올려지는 것은 눈물을 쏟던 그 분의 얼굴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여객기는 물론 해군함정까지 보내 자국민을 철수시킨다. 한국기업은 거대한 여객선을 투입해 외국인 근로자까지 돌본다. 그 광경을 그분은 하늘나라에서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
생지옥 같은 리비아에서 모처럼 전해진 희망의 뉴스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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