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텍’(Caltech)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는 남가주 패사디나에 위치한 명문 사립대학이다. 전국에서 첫 손 꼽히는 명문대 중 하나로 특히 엔지니어링과 기초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며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와 미 동서부를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하다. 학부생이 900여명에 불과하고 오히려 대학원생 수가 더 많은 연구 중심 대학이며 유명한 NASA(미 항공우주국)의 JPL (Jet Propulsion Laboratory)도 칼텍에 있다. 칼텍 출신이거나 칼텍 교수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31명이나 되고 이들이 수상한 노벨상 수는 합쳐 32개에 달한다. 특히 칼텍은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수가 2만5,000명도 안 되기 때문에 졸업생 1,400명당 노벨상이 1개씩 나온 셈으로 이 같은 비율은 전 세계 대학 중 단연 최고로 알려지고 있다.
갑자기 이처럼 칼텍에 대해 장황하게 서론을 늘어놓은 것은 지난주 칼텍이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농구코트에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지난달 22일 칼텍 농구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다닌 학교로 유명한 옥시덴탈 칼리지를 46-45로 따돌리고 무려 26년간 이어져 왔던 310게임 컨퍼런스 연패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포츠와는 담을 쌓고 책상머리에만 붙어 살 것 같은 ‘공부벌레’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기 10여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구한’ 역사의 연패행진을 끝낸 것이다. 이 정도라면 칼텍의 승리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
사실 칼텍이 경기에서 연패행진을 마감하기란 26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불가능해 보인 적이 많았다고 한다. 주전선수들조차 고교시절 농구팀에서 뛰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엄청난 수업량을 따라가기 위해 밤새 공부하느라 연습장에선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경기 중에도 벤치에서 밀린 숙제를 하느라 바쁜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런 팀으로 경기에 이기길 바라는 것은 헛된 망상이나 사치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텍이 나가면 지기만 하는 스포츠팀들(칼텍엔 남자 9개 종목, 여자 8개 종목의 스포츠팀이 있으며 연패행진은 농구 한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을 없애지 않고 계속 유지시켜 온 것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는 것도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학교 측의 신념 때문이라고 한다. 칼텍의 체육담당 디렉터인 줄리 레베것이는 “여기(칼텍)에선 이기느냐, 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라고 말해 그런 철학을 대변했다. 결국 장차 미국은 물론 세계를 움직일 천재들은 대학시절 패배와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먼저 배우고 있는 셈이다.
사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도 사냥에서 7번 가운데 평균 6번은 허탕을 친다고 한다. 많은 성공사례 뒤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실패가 뒤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입증된 진리다. 물론 인스턴트식 성공 스토리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선 도전과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 꾸준함과 평범한 진리보다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패는 건너뛰고 성공으로 직행하려는 약삭빠름이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이런 약삭빠름은 기초공사를 대강대강 마친 고층빌딩 공사처럼 당장은 남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마련이다. 실패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는 지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칼텍은 진정한 의미의 ‘학원 스포츠’를 통해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거쳐 힘겹게 얻어낸 성공의 열매는 쉽게 얻은 승리에 비해 훨씬 더 달콤하고 짜릿하다. 이 날 극적인 1점차 역전승으로 칼텍 선수들이 역사적인 승리를 따낸 직후 코트로 쏟아져 내려온 칼텍 팬들 가운데는 칼텍 총장과 노벨상 수상 교수도 있었고 이들은 학생 및 선수들과 포옹하고 춤을 추며 환호했다. 또 어떤 교수는 이 날 농구경기에 출전한 제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음날 제출해야 될 과제의 제출 데드라인을 24시간 연기해 주는 ‘파격’ 혜택을 베풀기도 했다. 칼텍에서 이것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는 선수(학생)들이 더 잘 안다. 칼텍의 파티타임이었다.
김동우 스포츠부 부국장 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