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만 해도 워싱턴의 파워구도는 이민개혁안 성사에 더 없이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었다. 상원에서 꿈의 60석까지 확보한 ‘민주당 천하’를 맞아 이민개혁에 대한 부푼 기대로 시작되었던 2010년은 티파티의 돌풍 속에서 더욱 높아진 반이민 장벽을 체감하며 ‘무산된 드림’과 함께 허탈하게 끝났다.
금년의 환경은 나쁘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 티파티에 휘둘리는 공화당 지도부, 연방·지방 할 것 없이 모든 정부가 적자에 시달리는 최악의 재정난… “이민개혁 가능성 제로”라고 단언해도 탓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2년, 워싱턴의 이민개혁은 움직임을 멈춘 채 깊은 겨울잠에 빠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먹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밝은 빛, 몇 가지 희망의 기미가 확실하게 읽혀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드림법안의 실현을 다짐하던 1월말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대표는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상정했다. 새 상원의 최우선 추진 10대법안의 하나로 공식 상정한 것이다. 대폭 축소된 규모이지만 드림법안이 포함되었다.
2명의 중진 상원의원, 공화당의 린지 그래엄과 민주당의 찰스 슈머도 ‘초당적’으로 이민개혁 재점화 시도에 들어갔다. 아직 양당의 의지를 시험하는 단계이지만 “누가 아느냐, 우리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이루어낼지”라며 슈머는 희망의 줄을 던져준다.
새 회기 시작한지 불과 한 달 만에 상정하고 추진하다니, 예상보다 빨라 놀랍고 반갑다.
물론 실현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갈 길은 멀고 험하다. 강경파 의원들은 여전히 ‘사면 절대 불가’를 재천명하고 있고 적자에 시달리는 각 주정부들은 티파티의 극우보수 바람에 편승하며 초강경 단속을 앞세운 갖가지 반이민 법안을 숨 돌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단속을 아무리 강화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 이민문제의 핵심은 1,100만명에 달하는 기존 불법체류자다.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늘에서 숨죽인 채 ‘체류’할 것이다. 전원추방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반이민 분노를 달래며 장기적 국익을 위해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가의 몫이다. 이번 의회에서 이민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것은 공화당 의원들이다.
실용적 중도파 의원들의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요즘 같은 감정적 양극화의 시대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중도파 중진들이 티파티에 밀려 예선에서 탈락했듯이 자칫 표밭의 분노를 샀다간 존 베이너나 존 매케인도 다음 선거에서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인의 표밭만이 아니다. 급증하는 히스패닉 인구와 함께 이민자 표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2010 센서스 결과가 말해주는 ‘인구의 획기적 변화’는 공화당의 정치적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드림법안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나는 배경이다.
금년 공화당의 상원장악을 저지한 것은 히스패닉의 힘이었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콜로라도의 민주당 연방상원 후보들은 히스패닉 몰표가 아니었으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전체의 10%를 차지하면서 일부 선거결과를 좌우하는 히스패닉 유권자가 2050년엔 30%로 늘어날 것이다.
더 주목할 것은 어린이 인구통계다. 지난 10년간 18세 이하 백인인구는 감소했다. 히스패닉과 아시안은 급증했다. 3세 이하에선 백인이 마이너리티다. 15년 후엔 소수계가 미국 유권자의 과반을 넘는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목격하며 현명한 공화당 전략가들은 이미 2012년을 향한 표 계산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히스패닉 표밭을 외면한다면 2012년 백악관 탈환은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라오피니언의 전국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찍겠다는 히스패닉 유권자는 9%에 불과했다.
부시가문의 차기주자 젭 부시도 말했다. “우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히스패닉 인구가 결국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유권자 인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공화당이 눈앞의 인구현실을 무시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면 금년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쯤 이민개혁의 초당적 추진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민개혁의 가장 원만한 출발점은 드림법안이다. 공화당 여론의 60%가 지지하는 인도적 법안이며 재정적자와 노동력부족 해소에도 기여할 경제적 법안이다. UCLA의 한 연구분석에 의하면 드림법안으로 합법신분을 얻은 젊은이들의 취업에 따른 세수입 증가는 향후 40년간 3조6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동안 티파티에게 끌려왔던 공화당 지도부가 이젠 과감하게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이민의 나라’ 미국의 이상실현을 위해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체자가 되어버린 수백만 ‘미국의 청년들’을 위해서도, 공화당의 2012년 승리전략을 위해서도 ‘드림법안 통과’로 시작하는 이민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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