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30년 살다가 퇴직한 후 중국 동북삼성 최남단인 대련시에서 선교 차원으로 자원봉사한지 벌써 6년이 됐다.
나는 만주 봉천 (지금의 요녕성 심양시) 서탑에서 태어났다. 10살 때 해방돼 서울로 귀국했다가 약 20년 후 미국으로 왔고 다시 30년 후 중국으로 와 보니 중국 사람들이 고향사람 같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요즘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것을 본다.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시간차가 1시간이기 때문에 정신이 흐리멍덩한 가운데 관광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관광객들에 바가지 씌우려고 계획하여 준비된 공간에서 중국을 경험하다 갈 것이다.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시간차가 11시간이기 때문에 밤과 낮이 바뀌어 며칠 동안은 정신이 흐린 가운데 관광을 하게 된다. 중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가이드를 놓치면 죽는가 싶어 정신 바짝 차리고 가이드만 따라 다닌다.
관광 명소 몇 군데 돌고 현지인이나 개별관광객은 들어가지 못하게 한 비밀장소에 여행사에서 버스로 실어가는 단체 관광객들만 고급 백화점 같이 꾸며놓은 공간으로 데려가 한 문으로 들어갔다 다른 문으로 나간다.
먼 중국에 관광 왔던 기념으로 가짜든 진짜든 바가지 쓰든 별 방법 없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며칠 반복하다가 기한이 되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관광객을 털어 먹으려고 미리 특별히 준비하고 설치한 그물 안에서 돌아다닌 경험담이지 진짜 중국 경험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6년 생활하는 동안 소련 국경이 있는 흑룡강성에서부터 최남단 난링시를 거쳐 월남 국경을 넘고 버마 경계인 쿤민과 보산까지 중국 최동쪽 청도시, 상하이시, 광동시로부터 최서쪽인 카작스탄 경계인 신강성의 우루무치시까지 혼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한 번에 2-3개월씩 2번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중국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아직 올바른 대답을 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신 중국에 사는 동안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사건을 소개하겠다. 2008년 어느 추운 겨울날 복잡한 인도 한 가운데에 보기에도 흉측한 모양의 불구자 어린아이가 속살이 보이는 남루한 옷을 걸치고 그 찬 시멘트 바닥에 엎드러져 구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은 부러진 의자가 길거리에 버려진 것같이 보였다. 한쪽 다리가 뒤로 뒤틀려 어깨까지 올라갔고 걸을 수 없는 가느다란 다른 다리는 몸을 겨우 지탱할 정도였다. 그 몸이 바닥에 엎드려 있으니 참으로 끔직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에 모습이 너무도 불쌍해 돈을 통에 넣어줬다. 나도 돈을 통에 넣어 주려 하는데 그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힐끔 쳐다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어린아이의 모습은 오관이 참으로 훌륭했다. 잘 생긴 한국아이 같았다.
나와 같이 걷던 조선족 중국인이 나에게 말했다. “김 선생님이 주신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그 어린아이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어린아이를 훔쳐다가 억지로 병신 만들어 이곳에서 구걸하게 하는 사람에게 보태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 연변에서 1999년경에 3-5세 된 조선족 아이들을 많이 잃어버려 아이들 조심하라는 소문이 크게 났다지요. 아마 그 아이들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지요.” 나는 마음이 더 아팠다. 아니 우리 조선족 아이들이라니!
다음날 나는 어린아이 입을 옷과 돈을 가지고 그 아이 있던 곳에 찾아갔다.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와 같이 일하던 조선족 중국인이 말했다. “김 선생님이 그 옷을 아이에게 준다 해도 그 옷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따뜻한 옷을 입고 앉아 있으면 수입이 적어지기 때문이지요.”
나는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대련시장에게 편지를 썼다. “이런 불행한 불구의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자비로 보살피겠습니다.” 다음날 조선족 중국인에게 내 편지 번역을 부탁했다.
그가 읽어 보더니 “김 선생님 뜻은 알겠습니다만 이런 편지 100통 써서 보내도 시장은 꿈쩍도 아니할 것입니다. 시장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만약 천에 한번 시장이 허락한다 할지라도 그 악독한 아이의 주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큰 봉변당합니다. 나는 이 글을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편지를 지금 껏 갖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최하급 경제 국가에서30년 만에 세계 제2의 당당한 경제 강대국이 된 것은 사실이다. 초강대국이 되어 가는 중국과 경쟁을 하려면 중국의 한 면만 보고 오해하는 일 없이 옳게 알아야 한다.
중국과 협력하여 공동으로 번영하고자 한다면 중국을 더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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