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4일 월요일 저녁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내년도 교육예산 편성을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교육예산 심의는 매년 1월초 교육감이 다음해의 예산 요청안 초안을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교육위원회가 공청회를 거쳐 심의한 후 2월까지 교육예산 요청안을 확정해 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Board of Supervisors)로 보낸다. 일단, 이렇게 수퍼바이저위원회로 넘어온 교육예산 요청안은 카운티의 다른 일반 예산 요청안과 함께 수퍼바이저위원회 자체의 공청회와 심의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4월중에 카운티의 다음 학년도 교육예산 배정 액수가 결정되어 교육위원회에 통고된다. 교육예산 배정액을 통고 받으면 교육위원회는 다시 공청회를 열고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배정된 총액에 맞추어 세부항목조정 등을 마치고, 5월말까지 다음 학년도의 교육예산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이번 공청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종일반 유치원 문제였다. 인근의 메릴랜드주는 법적으로 모든 유치원이 종일반이어야 하는데 비해, 버지니아 주는 이를 각 학군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그래서 사실 훼어팩스 카운티에서는 오랫동안 유치원이 반나절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을 약 10년 전부터 학력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교들부터 점차적으로 종일반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실시하기 시작했고, 종일반 프로그램을 카운티 전체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 불과 약 5년 전의 일이었다.
일단 향후 3년에 걸쳐 카운티 전체로 종일반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결정을 내린 후 첫 2년 동안은 잘 진행되었지만,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예산문제에 봉착해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후 급기야 지난 2년 동안은 종일반 프로그램을 단 한 학교에도 더 확대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카운티 전체 139개 초등학교 중 아직 종일반 프로그램이 실시되지 않고 있는 37학교에서 볼 때 상당히 불공평한 처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일리가 있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도 나름대로 가르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고 학력 평가도 하는데, 종일반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시간만으로는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니 선생님들이 가르침에 있어 서두를 수밖에 없고, 종일반에 비해 두 배 숫자의 학생들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가르쳐야 하니 업무량도 배로 많다는 것이다.
또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나절 프로그램에 다니는 자녀들의 데이케어 문제도 추가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손실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해 동안 참아왔는데 더 이상은 경기침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위원들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옳은 주장들이었다.
이 날 공청회에선 발언권 신청을 위해 총 67명의 카운티 주민들이 사전등록을 했고, 그 중 약 60명 정도가 실제로 발언권을 얻어 자신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교육위원회에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60명의 발언자 중에 동양인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교육관계 공청회를 거칠 때마다 필자가 느끼는 것은,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회라고 자부하는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는 기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것이다. 훼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 학생들의 인종적 분포를 보면 거의 20% 가량이 동양인이다.
그러나 필자가 1995년에 처음으로 교육위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실제 공청회에 참여하는 동양인들은 항상 극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공청회에서의 발언에는 나름대로 용기도 있어야하고 언어의 장벽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 있다면 통역을 대동할 수도 있고, 사실 이제는 언어에 큰 불편이 없는 1.5세나 2세들도 적지 않기에 이들로부터 충분히 높은 참여를 기대할 수도 있는데 여전히 참여가 미미하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과 직결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인데도 다른 사람들에게만 맡기고 손 놓고 있는 것이다.
보통 동양 사람들은 ‘모델 이민자’들이라고 불린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준법정신이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조용하며 말썽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조용한 것이 꼭 참여해야 할 일에도 조용한 것이 문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이웃과 함께 좋은 커뮤니티를 건설하는 일에는 방관자처럼 보고만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도 나름대로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한 주인의식을 갖고 당연히 주어진 몫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삶고 자식을 기르며 살아갈 거라면 더 이상 이방인처럼 살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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