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ABC-TV ‘굿모닝 아메리카’의 앵커 조지 스테파노폴로스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첫 질문을 던졌다 :
“중국은 우리에게 친구입니까, 적입니까?”
언제나 논리가 명쾌한 힐러리에게서도 즉답은 나오지 않았다. “레드카펫을 깔며 후진타오 주석을 환대하는 것은 우리가 진전을 이루어야 이런 질문에 더 잘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모른다는 말입니까?”
“긍정적이고 협력적이며 포괄적인 정상적 관계가 나의 희망입니다…국빈방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미국이 중국의 태도를 하루밤새 변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약간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힐러리는 확답을 미루었다.
사실 지금으로선 누구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은 국제사회 우선과제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동반자여야 하지만 매사에 잠재적 위협을 안고있는 경쟁자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선 아직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과 멀어질 수 없다. 동등하게 맞서길 원하면서도 미국과 미국민의 지지와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관계를 악화시키기엔 서로에게 너무나 의존해있다. 그러나 친해지기엔 서로가 너무나 다르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인용한 한 중국인의 정의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메이드인차이나’가 없는 미국인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바마가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잡아가둔 후진타오에게 우정을 느낄 수 있겠는가.
19일 양국정상회담 후 오바마와 후진타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시각의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오바마는 중국이 질색하는 ‘인권 보장’을 환영사에서부터 못 박았고 후진타오는 내정간섭 말라는 암시의 ‘상호존중’을 강조하며 받아 넘겼다. 오바마는 위안화의 평가절상 필요성을 거듭 지적했지만 “환율은 물가 잡는 도구가 아니다”라는 후진타오의 입장도 흔들리지 않았다.
북핵 관련 구체적 해결책은 예상대로 별로 없었다. “북한의 추가도발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정도의 합의에 그쳤다.
양국의 의견 조율에 가장 힘들었던 이슈가 한반도 문제였다는 뒷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위협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중국은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고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등 단어도 중국의 반대로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한다. 두정상의 발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오바마는 ‘북한’을 여러 차례 언급했으나 후진타오의 발언은 ‘한반도의 비핵화’’당사자들의 공조와 협력’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전될 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한문제 해결의 보다 근본적 장애중 하나는 미·중 양국의 신뢰결핍이라고 버크넬대학의 지퀀주교수는 지적한다. 쉽게 말해 중국은 미국과 협력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왜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못하는가. 그 요인 중 하나는 북한정권 붕괴시 난민에서부터 북한의 내전발생, 통일한국의 미군주둔 등 중국이 떠안아야할 엄청난 부담에 대해 미국이 전혀 배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의도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양국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지난 1년 험난했던 관계는 이번 방문으로 개선의 물꼬를 트게 됐다. 후진타오 방문을 바라보는 미 정가나 언론의 시선은 냉담하지만 백악관의 대접은 융숭했다. 중국이 원했던 것은 처음부터 21발의 예포와 화려한 국빈만찬으로 평가되는 상징적 효과였다.
중국으로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국제사회에서 빅 파워의 자리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안정된 분위기에서 후진타오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확실하게 다지고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하려는 방문목적은 무난하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가 안고 온 450억 달러짜리 선물보따리가 풍성하고, 골치였던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화약속까지 받아냈으니 미국도 나쁠 건 없다.
문제는 이 해빙기류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이다. 성공적인 워싱턴 방문을 갈망하며 여러 가지 양보를 허용했던 후진타오가 귀국한 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그의 권력이양 준비에 못지않게 오바마도 2012년 재선을 앞두고 국내문제 해결에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다. 화려한 만찬의 기억이 사라질 무렵이면 양국의 갈등 이슈는 다시 부상될 것이고 적인지, 친구인지 모를 아슬아슬한 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1위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추정시기는 10년 정도 남았다. 아직 이기적인 경제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이 그때 책임있는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로부터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을 휘저으며 자원을 확보해가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파워가 강화되고 주장도 강해질 것이다. “빅 파워로 대우받고 싶으면 빅 파워처럼 행동하라”는 미국의 압력은 곧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오히려 그때는 중국이 매년 2,500억달러의 이자를 챙겨가는 채권국의 파워를 제대로 휘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